회원가입 ID / PW 찾기
 
 

 

Home > 보도자료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의 최근활동을 알려드립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진정내용(고문 피해자)
  • 작성일
  •   :  2011-03-15

    국가인권위원회 진정내용(고문 피해자) : 박00 등 9명


    <북한최고통치자를 인권침해 범죄자로 조사하여야 하는 이유〉


    인권침해 범죄의 피진정인(가해자) 김정일의 경력 및 지위


      가해자 김정일(金正日, Kim Jong Il)은 1941년 2월 16일 러시아연방공화국 하바로프스크州 브야츠크에서 전(前) 북한 주석 김일성의 자로 출생하여 1964년 김일성 종합대학 졸업하고, 같은 해 1964년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지도원으로 출발하여, 1967년 당 선전선동부 과장(25세), 70년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28세), 1972년 빨치산 원로모임 후계장 내정, 1973년 당 중앙위 조직비서 겸 지도부장, 선전선동 담당 비서, 3대혁명소조운동 총책임자(31세), 1974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정치위원으로 선출됨, 후계자 공식 천명(32세), 1975년 공화국 영웅칭호 (33세), 1980년 당 정치국 상무위원, 당 군사위원, 당 비서국 비서(38세), 1982년 최고인민회의 제 7기 대의원(공화국 영웅 칭호), 1986년 최고인민회의 제 8기 대의원(44세), 1990년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제9기 대의원, 1991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등극 (49세), 1992년 공화국 원수 칭호 (50세), 1993년 조선국방위원회 위원장 취임(51세), 1994년 김일성 사망 시 장의위원장(52세), 1997년 조선노동당 총비서, 1998년 ‘김일성 헌법’으로 헌법을 개정한 이후 이 헌법에 근거 공화국 최고지도자인 조선국방위원회 위원장 재추대, 최고인민회의 제 10기 대의원(56세), 2003년 최고인민회의 제 11기 1차 회의에서 국방위원장으로 재추대(61세), 2009년 최고인민회의 제12기 대의원으로 재추대되는 등의 경력을 가지고, 현재 북한 국방위원회 위원장, 조선 노동당 총비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직책을 가지고 사실상 지방정권인 북한지역을 1인 독재체제로 통치하는 자이다.


    진정사실 


      가해자 김정일은 북한의 최고통치자로서 자신의 지휘․감독하에 있는 성명불상의 자들에 대한 지시 등을 통해 이들과 공모 공동하여 아래 내용과 같이 피해자인 진정인들에게 인권을 침해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추가 진정사실


      진정인들은 대부분 탈북하다가 체포되어 평안북도 신의주 보위부구류장 등에서 인권침해를 당하고 탈북하여 현재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고 있으나, 피진정인 대한민국 정부(법무부, 외교통상부, 통일부)는 피해자가 북한에서 당한 고통(반인륜적 범죄로 시효가 없음)에 대하여 이를 조사하지도 않고 피해를 예방하고 구제할 아무런 법적, 외교적, 사실적 노력을 하지 않고 있는바, 피해자의 위와 같은 상황은 피진정인이 대한민국의 영토내에 있는 우리 국민과 재외국민에 대한 보호의무, 특히 북한당국으로부터 인권침해를 당한 국민과 동포의 보호와 권리구제를 소홀히 하는 차별적 처사에 기인한 것이므로, 현재도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대한민국 정부가 수사, 실태조사, 국제공조 등을 통해 인권침해의 방지와 처벌, 피해구제를 위해 다양한 최선의 조치를 강구할 것을 진정하는 것이다.


    1. 진정인(피해자) 박00


      피해자 박00은 2002. 11. 경 중국으로 탈북을 하여, 연길, 안도 등지에서 1년 3개월 정도 숨어서 지내다가 2004. 4.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한으로 송환되었다.


      북한의 보위부원들은 피해자가 탈북하였다는 이유로, 삼지연보위부에서 약 15일간 조사를 하면서, 다른 탈북자들과 마찬가지로 신체수색을 하면서 처음에는 여자 보위부원들이 고소인에게 옷을 모두 벗게 한 후, 검은 장갑을 끼고 피해자의 성기를 벌려서 확인을 하였고, 나중에는 남자 보위부원들이 피해자를 시멘트 바닥에 눕혀 성기를 벌려 직접 눈으로 확인하였는데, 무엇하는 것이냐고 물으면, 에이즈나 성병에 걸렸는지 눈으로 확인한다고 대답하였는데, 에이즈나 성병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인데도 그러한 핑계로 여성인 피해자의 성기를 벌려보는 것에 피해자는 너무나 크게 충격을 받았고, 성적 수치심을 느꼈으며, 남자들 앞에서 옷을 벗어라고 해서 처음에 이를 거부했다고 뺨을 세게 맞았고, 너무나 무서워서 말을 고분고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피해자를 해산집결소(여자들이 약 50명 있었음)로 끌고 가서 약 6개월간 죽지 않을 만큼 강제노동을 시켰는데, 10~11층 정도 되는 안전부 건물을 짓는 작업을 하면서, 지시를 제대로 듣지 않고,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매를 심하게 때렸다.


      이후 신의주 구류장에서 재판받기 전 약 보름정도 대기를 하였다가, 평안남도 중산 소재 11호 노동교화소로 강제로 끌고 가서 약 1년 6개월 동안 강제노동를 시켰는데, 각 반마다 반장을 뽑아 통제에 동원하였는데, 피해자가 대리반장을 할 때, 감시원 2명이 자는 것을 제대로 제지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잠에서 제대로 깨지도 않은 상태에서 교도관이 군홧발로 피해자의 가슴을 강하게 차는 바람에 약 6개월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가슴이 아파서 방귀도 뀌지 못하는 고통을 겪었으며, 몽둥이로 때리고 맞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었고, 노동교화소에서는 일은 견뎌내기 힘들 정도로 강하게 시키면서, 기름기가 전혀 없고, 소금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은 음식과 시궁창 냄새가 나는 국을 급식하였기 때문에 항상 굶주림의 고통 속에 나날을 보내게 하는 등 자기의 구금 또는 통제 하에 있는 피해자들에게 신체적 또는 정신적 고통을 가하여 고문하는 행위를 하였다.


    2. 진정인(피해자) 서0 0


      피해자 서00는 1997년 7월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 길림성, 연변, 흑룡강성 등지에서 생활하다가, 2002년 6월경 중국 공안에 의해 체포되어 북한으로 송환되었다.


      피해자가 탈북을 하였다는 이유로, 함경북도 온성군 소재 온성보위부에 15일간 구류를 하는 동안, 보위부원들이 열 숟가락도 채 되지 않는 국수 죽을 먹이면서 심한 신문을 하였는데,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협박하고, 얼굴과 머리, 온 몸을 몽둥이로 때리고 구둣발로 짓밟았다.


      이후 온성보위부에서 무산보위부(무산군은 탈북 전 시집가서 살던 곳)로 후송하여, 온성보위부에서보다 훨씬 더 강한 폭행과 고문을 하였는데, 특히 돈을 숨겼는지 검사하기 위해서 여성의 자궁까지 벌려보고, 피해자를 비롯한 여성들을 알몸으로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여 시키고, 거꾸로 엎드리게 해서 자궁을 벌려보고, 손을 자궁에 넣어 뒤집어 보는 것은 예사였으며, 안전부 구류장에 40일 정도 있으면서 죄를 지었다고 자백하도록 강박하면서 몽둥이로 심하게 매를 때렸는데, 구두 발로 차고 나무 몽둥이로 두들겨 팼다.


      2003년 5월 4개월 동안의 폭행, 고문 끝에 피해자를 함흥시 영광군 소재 55호 노동교양소(이곳이 가장 악랄한 곳으로 유명함)로 강제로 끌고 가서 약 1년간 강제 노동을 시켰는데, 강냉이 농사를 하면서 강냉이를 숙소까지 옮겨야 되는데, 힘들어서 조금 적게 지고 가다 걸리면 몽둥이나 눈에 보이는 것을 아무거나 마구 들고 때리고, 발로 찼으며, 장마철에는 강에서 마데 작업을 하였는데, 일을 제대로 못하면 죽지 않을 만큼 때렸으며, 힘들어서 울면 더 무거운 것을 들게 하였고, 강제 노동단련소에서 배급되는 식사량은 턱없이 적어 배고픔에 항상 시달렸으며, 일은 힘들고 고통스러웠는데, 너무나 배고파서 배추밭을 지나다가 이를 뜯어 먹다 걸리면 몽둥이로 매를 마구 때리는 등 가혹행위를 자행하는 등 자기의 구금 또는 통제 하에 있는 피해자에게 신체적 또는 정신적 고통을 가하여 고문하는 행위를 하였다.


    3. 진정인(피해자) 도00


      피해자 도00은 2004. 8. 사회불만을 발설하였다가 '황일'이라는 자의 밀고로 376군부대 보위부에 체포되었고 2일 지하감방에 갇혀 있다가 자강도 강계에 있는 국가안전보위부로 이첩되었다. 여기에 3개월 수감되어 있는 동안 2004. 9. 머리를 긁었다고 성명미상인 30대 초반 계호원(간수, 계급 중위)으로부터 손을 몽둥이로 맞았고(흉터 있음) 한숨을 쉬었다고 계호원 *광호의 권총개머리판에 맞아 머리가 터졌으며 흉터가 남았다. 배식구로 머리를 내밀게 하고 군화발로 겉어차는 고문도 수시로 당하였다. 머리를 땅에 대고 머리카락으로 감방안을 닦게 하는 고문, 휴지통에 머리를 박고 엉덩이를 쳐들게 한 다음몸을 팽이처럼 돌리게 하는 고문, 수도꼭지 위에 올라서게 하여 발바닥에 고통을 주는 고문도 경험하였다.


      2004. 10.에는 탈북하여 남한으로 갔다가 다시 입북하여 체포된 고00이 성명불상 계호원으로부터 수갑찬 채 거꾸로 매달리는 고문을 당하는 것을 보았다. 그간 먹은 것은 옥수수 한 줌 남짓에 양배추를 넣은 소금국이 전부였다.

      2004. 11. 양강도 보위부 예심처 구류장에 수감되었고 여기서 2006. 7. 가석방될 때까지 20개월간 수감생활을 하였다. 양강도에서는 소금국도 없이 멀건 된장물을 받아 먹었다. 아침 5시부터 밤 11시까지 꼼작 않고 조각같이 앉아있는(움직이면 가차 없이 구타를 당함) 가혹행위를 당하였다. 한쪽 다리로 장시간 서 있게 하는 고문, 앉았다 일어섰다를 100번 내지 1000번 시키는 고문, 변기에 코를 박게 하여 질식시키는 고문,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 동생이 남조선으로 갔다거나 아내가 이혼을 제기했다고 거짓말을 전하는 심리고문 등을 겪었다. 구류장 안은 난방이 없어 귀가 헐어 물이 흘렀고, 그냥 매맞는 일은 너무 많아서 꼽을 수도 없었다.


      수도꼭지 위에 올라서 있는 고문을 당하다가 빈혈로 쓰러지면서 허리를 다쳐 현재 육체노동을 전혀 할 수 없으며, 의자에 오래 앉아 있기도 어려워 사무직으로 일할 수도 없다. 수감생활 중 위장이 잘못되어 식생활에도 애로사항이 많다.


    4. 진정인(피해자) 이00


      피해자 이00는 먹고 살기 어려워서 2003. 12. 탈북하였다가 일주일 후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자강도 만포시 건하리 소재 보위부에 수감되었다. 그곳에서 이유도 없이 말 안  는다고 손을 내놓게 하여 보위부군관 박정남, 보위부원 한명혁, 림00, 0용림에게 짓밟혔다(지금도 상처나 남아 있음). 특히 위 한명혁으로부터는 이유없이 이마를 각목으로 구타당하여서 이마에 흉터가 남았고, 옆사람과 이야기한다고 0용림이 피해자의 머리에 도끼를 던져 아직도 정수리에 도끼 자국이 남아 있다.


      2005. 11. 8년형을 선고받고 평양 상원에 있는 23호 관리소의 혁명화구역에 수감되었고, 2005. 11. 출산하였으나, 성명불상 계호원이 아기를 죽으라고 엎어 놓았고, 피해자가 아기를 다시 뉘이다가 머리를 구타당하여 치아 5개가 빠졌으며, 아기는 2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절명하였다. 이때의 충격과 후유증으로 현재에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며 수시로 몸이 붓는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5. 진정인(피해자) 박00


      피해자 박00(00)는 1998. 12. 탈북하였다가 1999. 4.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1999. 6.  신의주 보위부에 수감되었다. 그곳에서 성기에 숨긴 것을 찾아낸다는 빌미로 옷을 벗기우고 일어섰다 앉았다 하는 고문을 당하였고, 성기를 들여다 보는 가혹행위도 경험하였다. 다른 일행과 진술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수히 폭행당하였고,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무릎꿇고 앉아 있는 고문(움직이면 무자비한 구타를 당함)을 당하였다. 또한 1999. 7. 까지 40일간 강제노역을 하였다.


      1999. 7. 부터 1999. 9. 까지는 평안북도 신의주 안전부의 집결소에 수감되어 강제노역과 구타와 기아와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였으며, 그곳에서 같이 수감된 23세 김은주(여)가 고문과 영양실조로 죽었고 또다른 26세 여자가 1999. 8. 결핵으로 피를 토하고 죽는 것을 보았다.


      1999. 9. 부터 2000. 2. 까지는 평안남도 증산군 증산교화소에 있었는데, 구타와 굶주림과 병으로 고통을 당하였고, 일을 제대로 안 한다고 총창이나 구둣발로 수시로 가격당하였다. 그곳에서는 대략 이틀에 한 사람씩 사람이 죽어 나갔고, 교화소 안의 공동묘지에는 죽은 사람이 많아 제대로 매장을 못하였으며, 개들이 땅밖으로 나온 시체의 팔 다리를 물고 다녔다. 강제노동을 할 때 물을 안 줘서 더러운 도랑물을 먹었으며, 촌충 등 기생충에 감염되어 탈북 후 12번 적출 수술을 받았음. 지금도 손발이 저리고 잠을 잘 못잔다.

      2000. 2. 출소하여 2000. 9. 다시 탈북하였다.


    6. 진정인(피해자) 노00


      2003년 3월부터 같은 해 4월 까지 함경북도 온성군 소재 보위부 구류장에서 피해자 노00를 상대로 동인이 탈북하였다는 이유로 보위부 반탐과장이 교대로 취조를 하면서 발로 차고 때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밤이면 잠을 재우지 않고 한 다리로 서 있게  하는가 하면 뒷짐을 지고 허리를 굽히고 벽에다 이마를 대고 몇 시간씩 서있는 기압으로 고통을 주고, 11평방미터 정도의 방에 약 30명 정도 감금한 뒤 30명이 앉을 자리도 못되어 이들을 6열로 세우고 절반을 쪼그리고 앉아 있으면 나머지 절반은 서 있는 것은 벌을 주고, 한 사람이라는 말을 하면 서로 마주 세우고 때리기를 시키고, 몇 시간씩 앉았다 일어섰다 기압을 주고 지쳐서 쓰러지면 마구 밟고 때리고, 낮에는 불러 내여 일을 시키고 밤이면 조사를 하는 등 하다가 2003년 4월 걷지도 못하는 위 피해자를 함경북도 안전국 집결소로 이송하였다가 다시 약 두 달 뒤 평안남도 평성시 안전부 구류장으로 이송하여 그곳에서 재판을 한 뒤 2003년 8월 평안남도 증산군 용덕리 있는 11호 교화소에 보냈다.


      위 교화소에서도 탈북자라는 이유로 수시로 때리고, 자기의 구금 또는 통제 하에 있는 피해자들에게 신체적 또는 정신적 고통을 가하여 고문하는 행위를 하였다.


    7. 진정인(피해자) 김00


      2002. 5.경 함경남도 영광군에 있는 교화소에서 그곳 교도관을 통해 수감자인 피해자 김00이 염소 창자를 씻으면서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이를 일부 뜯어 먹었다는 이유로 몽둥이로 위 피해자의 전신을 사정없이 때리는 등 고문을 자행하였다.


    8. 진정인(피해자) 김00


      가.  피해자 김00은 2000년경에 밀거래 사실이 적발되어 약 30일간 안전부에 조사를 받던 중 일시 석방이 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00은 유죄의 처벌이 예상되자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북하였다. 그러나 김00은 10여일만에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다시 북한으로 이송되었으나 집결소로 이송되는 도중 다시 탈주하여 중국으로 탈북하였다.


    김00은 중국에서 탈북자를 돕는 활동을 하는 최00목사의 도움으로 교회에서 생활하던 중 약 한 달여 만에 다시 북한에서 온 보위원 2명과 중국 공안에 의하여 그곳 교회에서 생활하고 있던 탈북자 54명과 함께 현장에서 체포되어 북한으로 이송되었다. 김00은 온성군 보위부에서 조사를 받은 중 기독교인으로 오인을 받아 정치범으로 분류되었다. 일반적인 탈북자들은 탈북 경위에 관한 조사를 받고 노동교화등 비교적 약한 처벌을 받은 다음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정치범으로 분류될 경우에는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어 사회와 격리된다고 한다.


    나. 김00은 2000. 회령집결소에서 다른 5~6명의 정치범들과 함께 눈을 가린 채 약 4시간 차량으로 이동한 다음 인가가 전혀 없는 장수골 수감시설에 수감되었다. 그곳에는 3동의 건물이 있었고, 그중 김00이 수감된 건물의 1층은 돈사와 축사로 이용되었으며, 지하에 감방을 두었는데, 벽과 천장이 맞닿은 부근에 약 5센티미터 정도의 공간이 있어서 그곳으로 빚이 들어왔다. 지하에는 5개의 감방과 여려 개의 조사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감방에는 5~6명 정도의 수감자들이 수감되어 있었고, 그중 여성용 감방이 있어서 여성 수감자도 1명 있었으며, 대부분 수감된 지 5~6개월 정도 되었다고 하였다. 김00은 그곳에서 28일간 수감되어 조사를 받으면서 고문을 당했다.


    김00은 조사를 받을 때에는 항상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쇠로 된 신발을 신었는데, 이 신발을 신을 경우 무릎을 굽힐 수 없어서 제대로 걷을 수도 없었고, 바닥에 앉을 때에는 뻗정다리를 하여 항상 편 채로 앉을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 일어설 수도 앉을 수도 없었다. 이들은 조사 과정에서 몽둥이, 주먹, 군화발로 사정없이 폭행을 가했으며, 물탱크에 머리를 처 받게 하는 물고문을 가했다. 또한 배식구멍에 손이나 발을 내밀게 하여 군화발로 손발을 짓밟아 손톱, 발톱이 빠지는 상해를 가하였다. 또한 이들은 조사 과정에서 권총 손잡이로 복사뼈를 때리는 고문을 가하였다.


    다. 김00은 장수골에서 조사를 마친 후 재판소이 이송되던 중 수갑을 풀고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 내려 탈주에 성공한 다음 2001. 12. 대한민국으로 입국하였다.


    김00은 대한민국에서 거주하면서 북한에 있는 아내와 딸을 탈북시키고, 다시 어머니를 탈북시켜 현재 이남에서 가족들과 동거하고 있다.


    9. 진정인(피해자) 곽00


      가. 피해자 곽00는 남편이 암으로 사망하자 혼자서 자녀들을 부양하여 오던 중 1999년 식량기근으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자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1999. 8. 딸을 데리고 탈북하여 중국으로 연길로 이주하였다. 피해자는 그곳에서 약 3년간 불법체류자로 숨어 살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북한 보위안전부로 인계된 후 북한 온성 보위부에서 10일, 청진 집결소에서 1일, 함흥 단련대에서 6개월 수감되었다가 함경도 정선 동분소로 이송되어 3일간 구금되었다가 석방되었다.

     

    나. 피해자는 출소한 이후 흥남시에 거주하는 아들과 동거하다가 2004. 5. 다시 탈북하여 상해를 거쳐 북경에 도착하였다. 피해자는 탈북 약 한달되는 무렵 북경 주재 한국영사관으로 진입하기 위하여 영사관 주위를 서성이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되었다. 피해자는 중국 단동에서 1주일 구금되었다가 북송되었다. 피해자는 신의주 보위부에서 약 한 달간 수감되었다가 함흥 안전부로 이송되어 약 한달간 수감된 후 황해도 증산 교화소로 이송되었다. 피해자는 증산 교화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 2002년 탈북하여 대한민국에 입국한 딸의 도움을 받아 대한민국에서 송금하여 준 돈으로 석방이 되어 다시 흥남에 거주하고 있는 아들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2007. 다시 탈북한 후 같은 해 12. 20. 대한민국으로 입국하여 현재 파주에 거주하고 있으며, 아들은 아직도 흥남에 거주하고 있다.


    다. 피해자는 1차 탈북시 중국 연길에서 체포된 이후 북한 온성으로 이송되어다가 청진 집결소를 거쳐 함흥 단련대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 고문을 당하였다. 북한 당국은 피해자는 포승줄에 묶어 끌고 다니면서 강제로 무거운 돌을 들고 다니게 하였다. 조사과정에서 피해자의 온 몸을 내리치고 주먹으로 몽둥이로 피해자를 머리를 내리쳐 피해자로 하여금 똥을 싸고 혼절하게 만들었다. 북한 당국은 피해자를 수감하고 있으면서 식사를 제대로 제공하지 아니하였고 굶주리게 하여 피해자는 두엄 속에서 썩은 배춧잎을 주어다가 먹으면서 생명을 연장하였다. 또한 이들은 심지어 마실 물조차 조지 않은 채 피해자는 자기 오줌을 받아 마신 적도 있었다. 피해자는 단련대 생활을 견디기 어려워 핀을 먹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북한 당국은 탈북자를 조사하면서 임산부 여성의 배를 발로 차 그 임산부가 하혈을 하는 등 상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치료를 하지 않아 결국 그 임산부 여성으로 하여금 유산하게 하였다. 북한 당국은 수감자들에게 철창 밖으로 손이나 얼굴을 내밀게 하고는 닥치는 대로 때렸다. 피해자는 단련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 폭행과 굶주림으로 인하여 겨우 생명만 보전하였고 걸을 수 없어서 바닥을 기어 다녀야 했다.


    라. 피해자는 2차 탈북시 북경에서 체포되어 신의주 보위부, 함흥 안전부 및 증산교화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에서 고문을 당하였다. 피고인은 신의주 보위부로 이송되던 첫날 북한 당국은 탈주자들이 몸 속에 감춰 놓은 돈이나 물건을 찾아낸다고 하면서 피해자를 발가벗긴 다음 알몸으로 100회씩 높이뛰기를 시키고 남자 간수들이  피해자의 질과 자궁 속으로 손을 넣어 몸을 수색하였다. 보위부원들은 피해자를 조사하는 동안 제대로 답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머리를 콘크리트 바닥에 짓이겨 머리가 깨쳐 피가 나게 하고, 상처에 대해서는 아무런 치료도 해 주지 않았다. 보위부원들은 피해자에게 50㎏짜리 시멘트 자루를 지고 달리게 하였고, 달리지 못하면 밤에 잠을 자지 못하게 하였다. 또한 이들은 김정일을 찬양하는 노래를 가르치다가 피해자가 제대로 따라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때린 다음 며칠씩 빛이 없는 지하 감방에 가두기도 하였다. 피해자는 수감 생활이 조금만 더 길었다면 증산교화소에서 죽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시변소개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시변회칙
    주소 : 서울 중구 서소문로 103, 402호(서소문동 배재빌딩)
    tel : 3481-7703 Fax : 3481-7705
    Copyright ⓒ 2005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