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 [시론]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

작성일

: 2005-10-20

출 처

: 중앙일보 2005-10-05

[시론]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

[중앙일보 2005-10-05 06:35:21]

[중앙일보 강훈] 사법부의 과거 청산 논쟁으로 나라가 다시 시끄럽다. 개인이건 단체건 과거의 잘못이 발견되면 바로잡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 문제가 논쟁 대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청산의 목적이 과거를 반성해 미래의 공정한 재판으로 나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헌법 가치를 훼손하려는 것은 아닌지 많은 사람이 우려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법률은 재판에 있어서 3심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법관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므로 오심의 가능성이 있다. 오심의 위험은 100심제를 취한다고 하여 막아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분쟁을 조속히 해결하여야 할 필요성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버금가는 것이다. 따라서 재판이 잘못됐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을 때에만 재심을 통해 확정 판결을 번복하기로 한 것이 현재의 우리 제도다. 또 이러한 제도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다.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재심에서 보듯이 과거의 특정 사건이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현재의 형사소송법으로도 재심을 거쳐 구제받을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첫째, 국가보안법 등 우리나라가 국가안보를 위하여 갖고 있던 법률 자체가 잘못됐고 따라서 과거의 국가보안법 등 위반 사건 피고인들은 '민주.통일'을 위해 활동한 사람들이므로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아야 한다고 본다.

둘째, 그런 잘못된 판결들이 나오게 된 것은 '인권.민주' 등의 이념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재판부를 구성했기 때문이므로 이번 기회에 과거의 잘못된 판결에 관여한 법관들을 퇴출시키고 새로운 사람들로 사법부를 구성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잘못된 논리라고 생각한다. 먼저 국가 안보를 지키는 법률은 세계 모든 나라가 다 갖고 있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물론이고 북한이나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일수록 더 엄격하다. 통일을 이유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부정까지 용납하자는 것은 사회주의 실험 실패라는 현대사의 교훈에 눈을 감은 사람들의 주장일 뿐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전부에 대하여 재심 기회를 부여할 수는 없다.

또 사법부의 인적 청산 주장은 헌법 이념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것이다. 우리 헌법의 근간인 법치주의는 사법부의 독립을 전제로 한 것이다. 판사가 권력이 바뀐 뒤 자신의 재판이 비난받고 인사적 불이익을 받을 것을 염려해 법적용을 망설인다면 사법 절차를 통한 국가 보위는 불가능해지고 폭력이 사법을 대신하는 과거사가 반복될 것이다.

재심특별법 제정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3심제라는 헌법상 제도의 예외를 인정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권력을 잡은 세력들이 예외를 만든다면 그 반대 세력이 권력을 잡았을 때도 예외를 만들 것이다. 이는 법적 안정성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과거 우리 사법에 일정한 과오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신임 대법원장의 발언도 재판의 독립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과거 사법부의 잘못이 있었는지 찾아보고, 잘못이 있었다면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국민에게 사죄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겠다는 취지였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너무나 당연한 말을 빌미로 사법부의 인적 청산이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의 전면적인 재심을 주장하는 것은 특정 정치적 목적의 달성을 위한 억지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기 충분하다. 사법부 과거 청산 방안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러나 헌법에 의해 자격을 부여받은 법률가로서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자명하다고 생각된다.

강 훈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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