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시효 배제의 필요성과 문제(토론자료)

                        이  헌 변호사(“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총무간사)

1. 서  론

노 대통령의 8.15 축사 당시 언급된 ‘국가권력 남용으로 인한 범죄의 시효적용배제’ 발언에서 촉발된 공소시효 배제의 필요성에 관한 일각의 주장에 대하여 우선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노 대통령의 처음 발언내용은 “과거사 청산의 방법으로 국가의 권력남용 범죄에 대한 민형사시효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조정하는 법률의 제정 필요성을 언급하여 소급입법을 제정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이 나중에 장래에 관한 것이거나 형사적 소급처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는 해명이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현재 국회에 상정된 ‘반인권적국가범죄의공소시효등에관한특별법안’을 발의한 이원영 의원도 본 토론자와 함께 참석한 라디오 토론프로그램에서 형사적 소급처벌을 절대로 아니라고 단언하였던 바가 있다.

그러나 만약 누구든지 형사적 소급처벌을 염두에 둔 소급입법을 제정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제기한다면, 이는 원칙적으로 헌법에서 정하는 적법절차의 원리와 소급입법 금지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또 일각의 주장과 같이 과거 몇몇의 사건을 국가범죄라고 하여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하거나 예외적으로 이를 소급 처벌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원칙적으로 헌법에 위배된다는 비판의 소지를 안고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 시효 배제에 관하여

“시효배제”란 형사소송법이나 군사법원법에서 규정하는 공소시효의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효배제에 관한 입법으로서, 현행법상 ‘헌정질서파괴범죄의공소시효등에관한특례법’에서 정한 바와 같이 형법상 내란,외환죄, 군형법상 반란,이적죄, 살인죄 중 집단살해죄의방지와처벌에관한협약에 규정된 집단살해죄에 대하여 공소시효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거나,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례법’이나 독일형법에 나타난 바와 같이 12.12쿠데타나 학살범죄 등 일정한 범죄에 대하여 일정한 기간 동안 공소시효를 정지하는 방법으로 사실상 시효를 배제하는 방법이 있다.

독일이나 프랑스의 경우는 소추권 행사에 법률상 장애가 있는 경우에 시효 정지를 인정하는 일반적인 규정을 두어 사실상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입법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치와 동독이라는 불행한 과거사를 지닌 독일에서는 나치범죄의 처벌에 관하여 나치치하의 시기인 1933년부터 1945. 6. 15.까지 공소시효를 정지하거나, 동독공산당의 범죄에 관하여 1949년부터 1990. 10. 3.까지 공소시효가 정지하는 내용으로 시효배제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시효배제는 각국의 역사적 경험과 사회적 현실에 따라 공소시효를 인정하는 범위와 내용, 정지사유에 있어 차이가 있고, 이는 그 나라의 실정법 체계하에서 밝힐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현행법 체계하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12,12쿠데타와 같은 헌정질서 파괴범, 국제인권법 분야에서 인정되는 집단학살, 반인도범죄, 전쟁범죄 등에 대하여 시효배제를 인정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헌법적 관점에서는 공소시효기간이 경과한 헌정질서 파괴범 등 범죄에 대하여는 공소를 제기할 수 있게 하는 소급효를 무조건 인정할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다.

3. 시효배제에 따른 소급적용 문제

가. 공소시효 배제에 관한 일반론

시효배제 중 공소시효 배제에 따른 소급적용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서는 먼저 공소시효 제도의 의미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공소시효 제도는 일정한 기간의 경과를 이유로 범인에 대한 처벌을 면제하는 제도로서, 범죄행위가 종료된 후 공소가 제기되지 않고 일정한 기간을 경과하였다는 사실상의 상태를 존중하여 국가의 형벌권의 행사를 못하게 하는 제도이다. 공소시효 제도는 죄를 범한 자는 반드시 처벌되어야 한다는 범인필벌의 원칙과 충돌하므로, 죄를 범한 자라고 하더라도 언제까지나 소추에 관하여 불안정한 상태에 두어서는 아니된다는 법적 안정성의 요청을 정책적으로 조화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소시효가 완성되어 처벌받지 아니하게 된 상태는 기존의 법에 의하여 형성되어 이미 굳어진 개인의 법적 지위라고 할 것인데, 이를 사후입법을 통하여 박탈하는 것은 개인의 신뢰보호와 법적 안정성을 내용으로 하는 법치국가 원리에 의하여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나. 공소시효 배제의 위헌성

공소시효의 배제의 위헌성과 관련하여 1996. 2. 10.자 헌법재판소 결정을 살피자면, 이는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례법’에 관한 결정으로서, 다수의견으로 위헌성이 지적되었으나 위헌결정 정족수인 6인에 이르지 못하여 위헌결정이 되지 않았다. 위 5.18특별법은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파괴범죄를 범한 자들에게 당해 범죄행위 종료일로부터 군정이 종식된 1993. 2. 24.까지 공소시효를 정지함으로써 그 시효를 배제한 법률이다.

위 결정의 다수의견에 의하면, 공소시효에 대한 시효배제 입법은 헌법 제12조 제1항 후단(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 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에서 정하는 적법절차의 원리 및 헌법 제13조 전단(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되지 아니한다)에서 정하는 형벌불소급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위헌성이 지적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위 결정의 다수의견에서는, 개인의 인권보장의 측면에서 피의자의 처지를 대변하는 신뢰보호 원칙이나 법적 안정성의 측면에서 공소시효가 완성되어 소추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뒤에 뒤늦게 소추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형벌을 사후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입법과 같으므로, 헌법에서 규정하는 적법절차의 원리나 형벌불소급의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다.

반면 위 결정의 합헌론에서도, 기존의 법을 변경하여야 할 공익적 필요가 심히 중대한 반면, 그 법적 지위에 대한 개인의 신뢰를 보호하여야 필요가 상대적으로 적어 개인의 신뢰보호를 관철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예외적인 경우에 이를 허용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앞으로 12.12나 5.18과 같은 불행한 사태가 우리 헌정사에 반복되지 않도록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확립을 위한 헌정사적 이정표를 만들 필요성이 매우 중대한 반면, 반란이나 내란행위자의 신뢰이익은 보호받을 가치가 별로 크지 않다는 것으로서 그 예외사유는 극히 특별하고 예외적인 경우로 한정하였다.

즉 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시효배제의 특별하고도 극히 예외인 경우로서 우리 헌정사의 불행한 경험인 쿠데타를 허용할 수 없다는 국민적 여망과 헌법적 결단에 따라 합헌결정에 이른 것이다. 이 법의 공소시효 정지규정에 관하여도 다수의견이 위헌이었던 만큼, 공소시효 배제에 따른 소급입법은 극히 예외적이고 특별한 사유에 국한된다는 보아야 한다고 판시한 데에 큰 의미가 있으나, 위와 같이 소급처벌이 가능하도록 하는 법률은 시효배제에 관한 사유를 극히 특별하고 예외적인 사유로서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다수의견에 나타난 바와 같이 원칙적으로 위헌성의 지적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다. 국가범죄에 대한 시효배제

앞 서 본 바와 같이 공소시효 제도는 입법자가 형사소추에 있어서 범인필벌의 요청과 법적 안정성의 원칙을 함께 고려하여 상충하는 법익을 정책적으로 조정한 결과이다. 또한 공소시효 제도는 시간의 경과로 인하여 발생한 새로운 사실관계를 법적으로 존중하는 인권보장을 위한 장치로서 실질적 정의에 기여하는 것이다. 특히 이에 관련하여 국가권력 남용에 가담한 자의 인권은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등의 발상에 따라 법률안을 입안하고자 한다면, 이는 또 다른 인권 침해를 낳는 치명적 결과가 초래될 수 밖에 없음을 명심하여야 한다.

그런데 현재 입안된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공소시효에 관한 법률에서 국가권력의 남용으로 인한 반인권적 범죄라는 용어의 정의에 대한 판단기준이 애매하고, 또한 이는 자의적이거나 정략적으로 규율되거나 운영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범죄에 대하여 엄벌하여야 한다는 당위성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헌법의 테두리에서 적법절차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이러한 노력만이 이 나라 민주법치국가의 기반을 굳건히 다지는 길이다. 왜냐하면 자칫 잘못할 경우 이러한 입법 자체도 국가권력의 남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라.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사안, 미래 사안에 대한 시효배제

공소시효가 완성된 범죄에 대한 소급효를 ‘진정 소급효’라고 부르는 데에 대비하여,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사안에 대한 소급효를 ‘부진정 소급효’라고 하여 이를 구별한다. 이에 대한 일반적인 이론은 공소시효 제도에 관한 개인의 신뢰보호와 공소시효 연장을 통하여 또는 배제를 통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을 비교하여, 어느 것이 우월한 것인지를 살펴 그 형사상 책임에 관한 공소시효 문제를 입법적으로 해결하여야 하는 것이다.

우리 법체계하에서는 헌정질서 파괴범과 집단살해죄 등에 대하여 이미 공소시효를 배제한다는 내용의 법률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고, 국내법적 효력을 가진 국제법규로서 전범, 반인도범죄 등에 대하여 공소시효가 배제된다고 해석되므로, 위와 같은 범죄에 대한 미래 사안에 관하여는 이미 입법적으로 해결한 상태이다.

현재 국회에 상정된 ‘반인권적국가범죄의공소시효등에관한특별법안’에서도 소급 처벌이 아닌 미래 사안에 관한 공소시효 배제를 규정하고 있고, 부칙에서 법 시행 이전에 공소시효가 완성하지 아니한 범죄행위에 대하여도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부진정 소급효를 인정하고 있다.

이에 관하여 국회에서 공소시효 배제에 따른 공익과 반인권적 국가범죄에 가담한 해당 공무원 개인의 신뢰보호에 따른 사익과 사이에 과연 무엇이 우월한지에 대한 신중한 검토를 통한 입법과정을 거쳐야 함은 물론이다. 또한 형법 제135조에서 공무원이 직무를 이용하여 죄를 범한 때에는 그 죄에 정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한다고 규정하면서 형사소송법 제251조 공소시효 규정에서 가중하지 아니한 형에 의하여 공소시효 규정을 적용한다고 규정하여 공무원범죄에 대하여는 형을 가중하면서도 공소시효를 강화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입법태도와의 비교검토를 통하여 시효배제를 인정하는 입법적인 결단을 하여야 할 것이다.

마. 민사상 소멸시효 배제

민사사건의 소멸시효는 권리 위에 잠자는 자에게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으로서, 시간의 경과와 권리가 소멸한다는 점에서 형사사건의 공소시효와 유사하다. 형사의 공소시효가 범죄행위의 종료시부터 시작하는 등의 객관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 민사의 소멸시효는 청구권 행사를 게을리하였다는 주관적인 측면을 고려한 것이므로, 법률상 권리행사의 장애사유는 바로 소멸시효의 중단 내지는 정지사유에 해당한다.

반인도적 범죄의 피해자라고 하여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반인도적 범죄 등에 관한 민사상 소멸시효에 관하여도 공소시효와 마찬가지로 공익의 필요나 당위성이 있다고 하여 무한정 시효를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효로 인한 개인적 법익과 시효를 배제하고자 하는 공익과의 비교 등을 통하여 이를 해결하여야 하는 것이다.

또한 반인권적 국가범죄 등에 관하여 소멸시효를 배제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제정․시행중인 관련 특별법의 보상규정이 있다고 한다면, 이중의 배상이라는 법리적인 문제가 제기될 수 있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야 하는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 특별법의 보상에 비하여 시간이나 비용 면에 있어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지적될 수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서는 특별법으로 시효를 연장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는데, 과거 민주화운동의 피해자에 관한 보상과 관련 입법부작위에 관한 논란이 제기된 이후에 국회에서 국민적 합의에 의한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률 등과 같이 특별법을 제정하였던 바와 같이, 국가가 피해자에게 특별법을 통하여 보상을 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4. 맺는 말

국가기관에 종사한 개인이던 일반 개인이던 법적 안정성 확보의 차원에서 공소시효는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또한 공소시효는 예외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경우에도 존중되어야 하고, 그 제도 자체가 부정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소시효 배제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공소시효의 배제사유에 관한 국민적 합의와 요청이라는 부분에 관하여도 우리 헌법체계하에서 법치주의 원리하에 이 문제를 접근한다면,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진지한 논의를 통하여 국민적 합의와 요청을 도출하는 방법을 통하여 이 문제를 다루어야 마땅한 것이다. 그저 최고권력자의 발언에 발맞추고자 하는 것이거나 몇몇 시민단체에서 세몰이성 여론을 조성한다고 하여 이를 국민적 합의와 요청으로 보는 것은 지극히 곤란한 일이다.

특히 과거사 부분에 관하여는 진상규명도 되지 아니한 상태이고, 그 사건을 보는 입장에 따라 국가권력 남용이다, 아니다로 나뉘어 국민간에 혼란과 대립을 야기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리고 공익이나 국가적, 정치적 문제를 내세워 개인의 인권이나 신체의 자유, 법적 안정성을 무시하는 것만큼, 심각한 인권침해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상황을 놓고서 장래에 국가권력 남용이라는 비판도 제기되는 등 무익한 순환논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또 보복이 보복을 낳는 정치적 보복의 악순환만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일부 국민들은 과거만을 돌이켜 보고 싶은 분도 있을 수 있으나, 대다수 국민들은 과거를 되돌아 보기보다는 장래의 희망찬 미래을 바라보고 싶은 것이 보편적인 정서일 것이다. 특히 과거사 부분에 대하여는 진상규명과 화해를 통하여 역사적 평가에 맡기자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구태여 위헌시비가 있는 입법으로 국민들에게 혼란과 대립을 야기할 수 있는 상황을 결단코 지양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