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국가의 권력남용 범죄에 대한 민·형사 시효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조정하는 법률의 제정 필요성을 언급한 데 대해 법조계의 시각은 엇갈린다. 노대통령이 16일 자신의 발언이 형사적 소급처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고 부연한 데 이어 열린우리당도 과거 국가범죄에 대한 처벌문제는 국민적 합의를 전제해 형사소추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법리가 가능한지 등을 변호사 2인으로부터 들어본다.

－ “공익위해 소급처벌도 가능”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장완익 변호사는 16일 “오랜 세월이 지났더라도 국가범죄 가담자는 마땅히 형사처벌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살인, 고문 등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선 독일 ‘나치전범’의 경우처럼 공소시효를 아예 배제하고 그보다 정도가 낮은 조직적 은폐 등 불법행위는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공소시효를 중지시키자는 주장이다.

문제는 소급입법에 따른 위헌 시비다. 장변호사는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권 보호 역시 헌법에 보장하는 주요가치 중 하나”라며 “국가기관의 인권침해에 있어서는 법적 안정성보다 인간 존엄성을 더 상위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해 개인을 살해하고 이것도 모자라 조직적으로 은폐한 경우에도 공소시효 때문에 처벌을 못 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는 게 그의 인식이다.

장변호사에 따르면 공소시효는 국가가 부당하게 형벌권을 행사하는 경우에 대비해 일반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립됐다.

이를 범죄를 저지른 국가기관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공소시효의 도입취지에도 어긋난다고 그는 밝혔다.

여권 또한 과거 단죄에 대해선 ‘중대하거나 공익과 관련된 범죄의 경우 국민적 합의하에 소급처벌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어서 위헌성은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장변호사가 보는 중대범죄나 공익관련범죄는 과거 정권에 의한 의문사, 고문, 선거조작, 언론통제, 불법도청 사건 등이다. 구체적으로는 박정희 정권하에서 이뤄진 인혁당사건, 장준하·최종길 등 의문사, 동백림 등 간첩조작 사건들이다.

그는 장차 발생할지도 모를 국가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조정 또는 배제하자는 여당안에 대해서도 ‘찬성’ 견해를 밝혔다. 다만, 국가범죄가 아닌 일반 형사사범에 대한 공소시효는 법적 안정성 확보를 위해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 “소급입법 금지한 헌법훼순” －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의 이헌 변호사는 “국가든 개인이든 법적 안정성 확보 차원에서 공소시효는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못박았다. 그는 “공소시효 배제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국민적 합의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국제법상 인정되는 가치, 즉 전범 학살 과정에서 이뤄진 고문이나 독재체제하 반인권범죄를 제외하고는 소급입법금지, 일사부재리 등 ‘대원칙’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사법처리한 5·18특별법도 당시 위헌성이 제기됐지만 광주민주항쟁을 헌정사에 있어 일종의 국민저항권 개념으로 봤기 때문에 위헌결정을 피할 수 있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는 것이다. 원칙에 대한 예외가 인정되기 시작하면 예외가 원칙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변호사는 “모든 과거사를 다 끄집어내놓고 단죄하자고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장래 국가범죄에 있어 공소시효를 연장 또는 배제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나타냈다.

문제는 ‘피해자의 인권침해’다. 법적 안정성만 찾다가 국가공권력에 힘없이 당한 피해자들의 ‘신원’은 물건너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변호사는 이에 대해서도 “공익이나 국가적 문제, 정치문제를 헌법적 가치로 내세워 개인의 인권과 신체의 자유를 무시하는 것만큼 심각한 인권침해는 없다”고 반박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개념 또한 어떤 정권이 들어서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설사 가해자라 해도 피해자의 인권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논리다.

그는 “과거사 부분은 역사적 평가에 맡기자는 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따라서 위헌시비를 피하려면 법을 뛰어넘어 형사처벌 문제를 논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공소시효 배제 논란은 결국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정치적 악순환만 가져올 것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