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법관 선출의 헌법적 의의

1. 서   론

최근 미국의 연방대법관인 샌드라 오코너의 급작스런 은퇴로 말미암아 후임 연방대법관 인사를 놓고 공화,민주 양당은 물론이고, 미국내 보수,진보 세력간에 치열한 세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미국 언론에서는 이를 ‘사법내전’이라거나, ‘대법원 하이눈’,‘대법원 오렌지볼’이라고 부르면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권력분립과 법치주의, 사법부의 독립이 앞서 발전되고 확고하게 보장되었다는 미국에서 조차 누가 최고법관이 되느냐가 정치,사회,경제 등 국가의 장래와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에 이러한 세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올해 9월부터 내년 7월까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대법원장을 포함하여 전체 대법관 14명 중 10명이 물러나고, 헌법재판소장을 포함한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이 물러나게 됨으로써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이 절반 이상이 바뀌는 그야말로 엄청난 인사혁명을 겪게 되었다. 현 정권 출범 이래 보혁간 뿐만 아니라, 세대간, 지역간 대립과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최고 법관의 인사혁명은 그 규모나 내용 면에 있어서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싸움’이나 ‘사법내전’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얼마전 현 정권은 대다수 언론의 거센 비난을 무릅쓰고 현 대통령의 동기이면서, 대통령 탄핵사건과 행정수도 헌법재판에서 집권여당측 대리인 역할을 하던 인사를 헌법재판관 후보로 추천하였고, 국회에서 큰 어려움 없이 그 인사에 대한 임명절차를 관철시켰다. 그 인사에 대한 헌법재판관 임명과정을 지켜 보면서, 현 정권이 앞으로 어떤 성향의 인사를 사법부의 최고법관 자리에 앉히고자 하는지, 그리고 그 의지가 어떤 수준인지를 어느 정도 가름할 수 있게 되었다.

현 정권은 지난해 국가보안법이 합헌적이라는 결정을 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 대하여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갈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식으로 비난을 하였다. 또한 대법원의 여당 의원에 대한 선거법위반 사건에서 편파적인 판결이라는 비난을 제기하면서 대법관의 구성을 문제삼기도 하였다. 한편 헌법재판소에 대하여는 탄핵사건의 기각결정 당시 찬사를 보냈던 종전의 태도에서 돌변하여 행정수도특별법의 위헌결정에 대하여는 그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재판관 전원의 인사청문회까지 하겠다는 등으로 아직도 꺼지지 않는 감정의 앙금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현 정권은 출범 이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와의 관계에 있어 이런 저런 악연으로 인하여 현재 대법관과 헌재 재판관 등 최고법관의 구성에 대하여 비호의적인 입장에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집권여당의 어느 인사는 앞으로 대법관과 헌재 재판관을 소위 개혁적인 인사로 추천한다고 공언하였고 한다. 그리고 최근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의 구성원에 속하는 법무부장관을 그들이 말하는 개혁적 인사로 교체함으로써 최고법관의 인사추천에 대한 그들의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개혁이라고 함은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그들과 같은 이념이나 성향(코드)를 가지거나 동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현 정권의 임기 동안 대법원장과 대법관 및 헌재 재판관 등 최고법관은 모두 현 정권과 이념이나 코드를 함께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대통령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인사로만 채워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현 정권과 이념이나 코드 및 개인적인 인연 등을 함께하는 인사들 일색으로 구성된다면, 우선 행정,입법,사법부가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권력분립의 원리를 기초한 헌법정신이 훼손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밖에 없다. 다행히도 지난 재보선결과로 여소야대가 되지 않았다면 현 정권은 입법부에 이어서 사법부까지 장악하는 전대미문의 정권이 될 뻔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 국회내 정당의 이념과 성향이나 분포 등에 비추어 현 정권이 특정 정당의 도움을 받아 자신과 이념이나 성향(코드)을 함께하거나 개인적 인연이 있는 인사로 사법부를 장악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닌듯싶다.

또한 이렇게 최고법관이 구성된다면, 현 정권으로부터 피해를 보거나 현 정권과 다른 이념과 인연 등을 가지고 있다가 손해를 본 국민은 자신의 피해와 손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곳을 아예 잃어버리게 된다. 어떤 이는 이렇게 되면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고, 신문법, 과거사법, 사학법 등의 합헌결정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가 일시에 붕괴되지 않을까 하는 위기의식을 느낀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이렇게 되면 자신의 지위와 재산을 기득권이거나 개혁의 대상이라고 하여 공격하고 빼앗는 약탈행위가 합법화되어 버리고, 어느 곳에도 이를 하소연할 수도 없게 되는 상황을 걱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여론조사결과 등에 나타난 바와 같이 현 정권과 이념이나 인연 등을 함께하지 아니하는 국민들이 과반수 이상인 것은 엄연하고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현 정권이 최고법관을 현 정권과 이념이나 코드 및 개인적인 인연 등을 함께하는 인사 일색으로 구성하고자 한다면, 이는 권력분립이나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한다는 주장을 제기하는 정도를 넘어서 그들만의 개혁을 하고자 하는 측과 이를 저지하고자 하는 측, 체제를 수호하는 측과 이를 전복시켜 지배세력을 교체하려는 측과의 대립과 대결로서 ‘세싸움’이나 ‘사법내전’ 이상의 상황이 우려되고 또 각오하여야 하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 발표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본 공청회의 목적인 ‘사법권독립의 확립과 헌법수호를 위한 최고법관의 선출기준’과 관련하여 최고법관인 대법원장이나 대법관에 대한 선출의 헌법적 의의를 살펴보기로 한다. 이 발표 내용은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대법원 구성에 관한 공청회에서 고려대 법대 장영수 교수님이 발표하신 “대법관 선임방식의 헌법적 의미와 개선방향”의 내용을 상당부분 참조하였다.

아울러 변호사 단체의 편향된 이념추구를 배격하고, 시민의 편에서 실질적 법치주의를 추구한다는 취지로 지난 1월에 조직한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에서도 이러한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인 대응방안을 다각도로 강구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2. 사법부의 독립과 권력분립

우리나라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로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과거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로서 민주주의의 발전은 상당한 정도를 넘어 지나치다고 느낄 정도이다. 그렇지만 민주주의 발전과 더불어 강조되어야 할 법치주의의 중요성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법에 대한 불신, 사법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고, 아직까지 이를 해소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치주의의 실현을 위하여는 법률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수준 이외에도 사법작용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사법작용은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을 받았던 시기가 있었고, 민주화 이후에는 사법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는 과거 보다 높아졌으나 사법의 보수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얼마전 어느 헌재 재판관이 개인적인 일에 대하여 변명 한마디 못하고 낙마한 사건이나 법조비리 사건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현 정권이나 시민단체, 언론사 등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러한 사건을 초점으로 하여 사법에 대한 불신으로 몰고 간다. 그리고 이들을 중심으로 세몰이된 사법에 대한 불신을 토대로 하여, 사법제도의 개선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결국 사법개혁의 논의가 진행중이다.

사법개혁 그 자체에 대한 논의는 이 번 주제가 아니므로 논외로 하더라도, 사법개혁의 관점에서 사법부의 구성 및 활동에 행정부나 정치권이 개입하는 것은 헌법에서 허용하는 것이 아닌한, 원칙적으로 자제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사법의 본질은 공정한 재판이고 이를 위하여서는 사법부에 대하여 엄격한 독립의 보장 및 법관의 신분보장 등이 요구되는데, 사법개혁이라는 명분하에 사법의 본질을 침해하여서는 아니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법관 등 사법부의 구성에 관한 문제는 헌법과 권력분립 체계 내에서 사법의 본질인 공정한 재판과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여야 한다.

국가기관의 구성 및 활동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권력분립의 원리이다. 과거의 권력분립 이론은 국가기관의 분립을 주된 내용으로 하였고, 세월이 지나 국민주권을 내용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고 하여도 권력분립의 필요성은 사라지지 않고, 더욱 복잡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현대적 권력분립은 국민에 의하여 선출된 대표자라고 하더라도 권력을 남용할 위험성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억제할 수 있도록 상호견제 및 통제의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요청된다고 한다. 또한 국민에 의하여 창설된 국가권력이 그 임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요청에 따라 국가가 처리할 하나의 업무로서 사법기능을 사법부에 부여한다고 한다.

이러한 권력분립의 기본적 구조에서 사법기능은 사법부의 독립과 직접적인 관련된다. 사법의 역할은 법적 분쟁의 해결을 통하여 무엇이 법인가를 선언함으로써 당사자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고 법적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서는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공정하지 않은 재판은 올바른 법적 분쟁의 해결이 되지 않고 권리를 보장하거나 법적 평화를 보장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사법이 공정하게 법적 판단을 하기 위하여서는 중립성의 확보가 역시 그 핵심이다. 사법은 분쟁 당사자의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제3자적인 위치에서 판단을 하여야 그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러한 중립성은 사법의 독립성을 요청한다. 법원과 법관은 사건의 당사자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하고 법원의 판결에 기속을 받는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립적이고 공정한 재판을 통하여 국민의 권리구제와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현대적 권력분립하의 사법기능을 수행하는 전제가 바로 사법부의 독립이다. 사법부의 독립은 사법기관의 구성과 활동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원칙으로서, 단순히 권력분립체계상 다른 국가기관의 종속하에 두지 않는다는 것은 조직상의 독립 뿐만 아니라, 법관의 재판이 외부 영향을 받지 않고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기능상 독립도 포함하는 것이다.

현대적 의미에서 헌법의 최고 이념인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필요하고 다양한 기본권을 동시에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국가기관의 존립근거이고 목표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권력분립의 궁극적인 목표도 인권보장에 있으므로 사법기능도 국민의 기본권보장과 국가법질서의 안정성이라는 목적을 동시에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사법부의 독립은 권력분립의 근대적 의미이던지, 현대적 의미이던지 간에 정상적인 사법기능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가 된다.

3. 대법원의 구성에 관한 헌법원리

가. 대법원장의 구성

헌법 제104조 제1항에서는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여 대법원장의 임명권을 대통령에 부여하고 있다. 이는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현행 헌법에서 국가원수로서의 지위에 있는 대통령에게 헌법기관을 구성할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또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을 임명하도록 한 것은 대통령과 입법부가 함께 사법부의 구성에 관여하게 함으로써 사법부의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상호간에 견제와 균형을 도모하려는 헌법적 결단이라고 할 것이다.

대통령의 대법원장 임명권에 관하여는 누가 대법원장이 될 것인지는 법원 내부에서 결정하고 대통령은 단지 형식적으로 임명권을 가지고 있다는 해석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과거 우리 헌정사에서 대통령이 누구를 대법원장으로 임명할 것인지에 대하여 실질적인 결정을 가지고 실질적 임명권을 행사하였다. 그리하여 국회가 대법원장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킴으로써 대통령의 대법원장 임명권을 견제하였던 경험도 가지고 있다.

대통령의 대법원장에 대한 실질적인 임명방식을 취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에는 그 임명과정에서 의회의 철저한 청문절차를 거치고 임명된 이후 대통령의 영향을 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사법부의 독립성 확보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국회의 동의를 얻게 되어 있더라도 집권여당측이 결정된 당론에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청문절차에 의한 통제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또 임명된 이후에도 우리의 과거 경험에 비추어 대통령의 영향이 전적으로 배제되거나 그 독립성의 보장에 있어 철저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 대법관의 구성

한편 헌법 제104조 제2항에서는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여 대법원장과 더불어 대법관도 대통령이 임명하고 있다. 이것도 현행 헌법에서 국가원수로서의 지위에 있는 대통령에게 헌법기관을 구성할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대법관의 인사에 있어서도 대법원장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임명권을 실질적 임명권으로 볼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 대법원장 뿐만 아니라 대법관까지 대통령이 임명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경우에는 사법부의 독립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커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대법관을 임의로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대법원장의 제청”을 기초로 하여 임명한다.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권은 대법원장의 제청을 조건으로 하는 것으로서, 대법원장 임명의 경우와는 달리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제청된 인물에 대한 가부만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권이 실질적인 권한인지, 형식적인 권한인지 여부는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자를 대통령이 거부할 수 있는가의 문제라고 할 것이다. 최근까지 대법관 임명에 있어 대법원장이 제청한 대법관 후보를 대통령이 거부한 사례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권은 형식적인 권한으로 행사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이는 현실적인 상황에 따라 상당한 결과의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 것으로서, 대통령이 국무위원을 임명할 경우에도 국무총리의 제청을 받아서 임명하여야 하지만,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의사와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국무위원을 제청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만약 이러한 현실적인 상황이 대법원장의 대법관 임명제청에도 그대로 발생할 경우 대통령이 모든 대법원의 인선을 사실상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사법부의 독립을 위하여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래서 대법관의 임명에 관한 대통령의 권한을 형식적이고 의전적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제청된 후보자에 대한 거부권을 포함하여 사실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볼 것인지에 관하여는 권력분립과 사법부의 독립을 고려하여 대통령의 관여를 원칙적으로 제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대법관에 대한 형식적인 임명권을 가질 뿐이고, 실질적인 관여권이 없다고 보는 것이 우리 헌법에서 추구하는 권력분립이나 사법부 독립의 취지에 부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간의 대법관 임명사례에 비추어 이는 헌법적 관례에도 속한다고 할 것이다.

다.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

대법관의 선임과 관련하여 대법원장의 독단적인 제청만으로 대법관을 임명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그로 인하여 사법부내에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형성되는 경우에 있어서는 그것이 오히려 사법부의 독립에 심각한 위험요소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과거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에 따라 대통령이 거부하지 않고 임명하는 관례에 따라 대법원장이 그 대법관 후보자를 인선하는 기준이 지나치게 서열위주로 되어 있다는 점이 계속하여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과거에 대부분 대법관은 법원행정처의 고위직이나 각급법원장을 거친 인물 중에서 선발되던 관례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이 명실상부한 최고법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서는 단순한 법률전문가로서의 소양만으로 충분하지 못하고, 사회내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다양한 인적구성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사법부 내부에서 대법관의 임명방식에 대한 개선의 요구로 종래 대법원장이 독단적으로 대법관의 임명을 제청하였던 것에서 벗어나 2003년에 법원 내에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활동하게 되었다. 대법관제청위원회의 구성과 활동에 대하여 사법부의 구성과 활동의 특수성에 관한 엇갈리는 이해를 기초로 하여 한편에서는 법원의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것은 사법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위협한다는 주장이 있고, 대법관 인사의 민주성과 사법부의 민주적 개혁을 위하여 외부인사의 간접적인 관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서로 대립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장 스스로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를 설치하여 실제로 활동하게 함으로써 법원의 민주화에 대한 대세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다만 2003년 최초로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가 활동할 당시에 대법원장이 제안한 3명의 후보자를 대상으로 검토하라는 조건에 불만을 가진 자문위원들이 회의장을 퇴장하는 등의 마찰을 빚었다. 이러한 상황이 사법부의 구성과 활동의 특수성에 관하여 대립되는 이해관계에 따라 다시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대법원 내규로 설립된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를 법률의 제정이나 법원조직법의 개정으로써 그 법적 근거와 권한 및 활동범위 등에 관한 기준을 설정하여 주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사법부의 독립을 해치지 않은 범위내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보여진다.

4. 대법원의 구성에 대한 주장

대법원의 구성에 관한 주장으로서, 헌법개정을 전제로 하는 경우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임명제로 유지할 경우 대통령은 실질적 임명권이 아닌 형식적인 임명권만을 갖도록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고,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선거에 의하여 선출하는 방법을 도입할 경우 대통령의 임명권 자체를 전면 삭제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또 최근 각종 자문위원회가 구성되고 활동하는 것과 관련하여 대법원장의 임명절차에 관하여도 대법원장 임명자문위원회의 설치나 법원 내외부의 추천, 심의절차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대법관 임명절차에서 상원 법사위원회 심사에는 미국변호사회의 평가도 참고한다는 사실을 토대로 하여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임명에 관한 국회의 동의절차에 있어서도 재야법조인의 법정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의 평가나 의견을 참고하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개혁적인 인사들은 과거 독재정권 아래 사법부에 대한 반성과 폐쇄적․관료적 법관 인사에 대한 반성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거나, 최근 구체화되고 있는 사법개혁 논의에서 법관 인사제도나 법관 임명, 법관에 대한 감시,감독 등 사법부 내부개혁의 문제가 빠져 있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이에 따라 9월부터 이어질 신임 대법원장과 대법관 임명을 앞두고 시민사회의 의견을 일찌감치 모아야 하고 국민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시민단체에서 내세운 대법관의 임명기준에 의하면, ‘법원개혁에 관한 소신’, ‘여성,노동,환경 등 사회경제적 약자의 입장 대변’, ‘행정․입법기관에 대한 견제 역할 수행’, ‘법관 이외에 다양한 사회활동 경험’을 인선기준으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에 반면 ‘정치성이 배제된 인물’, ‘편향적, 급진적인 이념과 혁명적 방법론을 지양하고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인물’을 인선기준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현재 진행중인 사법개혁을 시작한 것은 대법원에 대한 불만이고 특히 대법원의 구성이 획일적인 데에 그 이유가 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대법관에 대한 임명권한이 대통령에게 있다는 이유로 정작 사법개혁위원회에서는 이에 대한 검토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대법원에 관하여는 폭주하는 상고사건과 대법원의 정책기능과 권리구제기능를 제대로 추진하기 위하여 고등법원 상고부의 설치를 다수 의견으로 대법관의 증원을 소수 의견으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대법관의 구성은 경력, 성별, 가치관 등 여러 측면에서 보다 다양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건의를 하였다.

이러한 주장과 관련하여 외국의 대법원 구성에 관한 입법례를 살펴보면, 최고 법원의 법관들은 직업법관 중에서 임명되는 경우가 많고, 헌법재판소가 별도로 있는 나라의 경우(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에는 대부분 직업법관 중에서 임명되고 있다. 그러므로 대법원의 구성이 획일적이어서 다양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 대세이기는 하지만, 폭주하는 상고사건을 처리하기 위하여는 고도로 훈련된 직업법관의 경력이 필요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고려하여 현재 대법관의 구성수준에서 몇 명의 비직업법관을 추가하여 참여시키는 방안이 바람직할 것이고, 법조인이 아닌 인사의 참여는 부적할 것이다.

5. 대통령 지위와 사법부의 구성

대통령은 현행 헌법상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이면서 국가원수로서의 지위와 행정부수반으로서 지위를 겸하도록 되어 있다. 이에 따라 헌법에서는 국가원수로서의 대통령에게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하고,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법관을 임명하며,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임명하는 등 헌법기관을 구성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우리 헌법에서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거쳐 대법원장이나 대법관을 임명하도록 하고, 헌재 재판관 중 3명은 국회에서 선출하고,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구성을 규정하고 있다. 위와 같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구성을 규정한 헌법정신은 우리 사회의 정치적, 이념적인 분포를 적절하게 반영함으로써 두 기관을 특정 정권이나 이념의 추종자로 구성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대통령의 지위에 있어 국가의 원수라고 함은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고, 대내적으로 국민의 통일성과 전체성을 대표할 자격을 가진 국가기관을 말한다. 국가원수로서의 대통령의 지위는 입법부와 사법부에 대하여 우월한 지위로서 현대화된 대통령제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통령의 지위에 관하여 대통령 탄핵사건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의하면, “대통령은 지난 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한 국민 일부나 정치적 세력의 대통령이 아니라, 국가로서 조직된 공동체의 대통령이고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의 범위를 초월하여 국민 전체에 봉사함으로써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에서는 법치국가 원리에서 파생되는 원리로서 헌법을 준수하고 수호해야 할 의무는 대통령에게 있고, 대통령이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헌법에 위반한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공공연히 개혁을 내세워 자신이 임명하는 대법관과 헌재 재판관을 모두 대통령 자신과 이념이나 성향(코드)을 같이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인사로 임명하고자 한다면,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의 범위를 초월하여 국민 전체에 봉사함으로써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지는 국가원수로서의 직무를 저버리는 행위인 것이다.

또한 이러한 대통령의 임명조치는 권력분립과 사법부의 독립에 정면을 기반으로 하는 헌법정신에 반하여 사법부를 장악하고자 하는 행위이자 이러한 헌법정신을 토대로 하는 헌법을 준수하고 수호할 의무를 위반하는 행위로서, 이러한 행위가 구체화된다고 한다면, 대통령에 대한 새로운 탄핵사유에 해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5. 맺는 말

사법의 핵심은 공정한 재판이고 이를 위하여서는 사법부에 대하여 엄격한 독립의 보장 및 법관의 신분보장 등이 요구된다. 개혁이나 사법의 민주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현 정권이 사법부의 구성에 개입하고자 하는 것은 사법의 본질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대법원장을 포함하여 대법관 등 최고법관에 대한 형식적인 임명권을 가질 뿐이고, 실질적인 관여권이 없다고 보는 것이 우리 헌법에서 추구하는 권력분립이나 사법부의 독립의 취지에 부합한다. 그러므로 대법원장 임명절차에 관한 제도적인 검토와 병행하여 앞으로 전개될 대법원장을 포함한 최고법관의 임명에 관하여는 권력분립과 사법부의 독립 등 헌법의 기본원리에 따라 대통령의 관여를 원칙적으로 제한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현 정권은 지금까지 코드인사를 단행하는 데에 전혀 부끄럼이나 주저함이 없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현 정권은 대법원장, 대법관, 헌재 재판관을 소위 코드인사를 통하여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등 최고 사법기관을 정치권력의 시녀로 전락시키고자 시도할 위험성이 크다. 어느 법원관계자는 공공연하게 대법원과 헌재가 현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인사들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체제의 수호하여야 하는 사명을 벗어나 현 정권이 주장하는 개혁의 전진기지나 지원기지로 전락하고 만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따라서 앞으로 대법원과 헌법 재판소의 최고법관을 새로 구성하는 데에 있어서 현 정권이 추구하는 코드인사를 배격하고, 사법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체제를 수호하는 보루로서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궁극적으로는 권력분립과 사법부의 독립을 추구하는 우리나라의 헌법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원리로 하는 우리나라의 체제를 지켜내기 위하여, 우리가 과연 어떤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을 진지하고도 지혜롭게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