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장관은 10.24. 국회답변에서 헌법의 영토조항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북한지역도 우리 영토로 선언하고 있는데, 이를 손보자는 것이다. “92년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우리 정부는 북한을 사실상 정부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영토를 휴전선 이남으로 한정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현정권은 최근에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를 받고 있는 강정구 교수가 구속 위기에 처하자 헌정사상 최초로 법무장관의 지휘권까지 행사하는 바람에 야당으로부터 정체성마저도 의심받고 있다. 그런 마당에 영토조항까지 손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니 그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인권에 눈감기, 송듀율, 강정구 교수 감싸기와 연결된 현정권의 북한 눈치 보기인 것 같다. 국가보안법의 무력화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인 듯 하다.

지금 북한에는 정치범수용소에 있는 수 십만명의 ‘반동분자들’이 있지만 그들은 그럴만한 ‘죄’를 지었다고 치더라도, 백주에 공개총살형이 집행되고, 탈북자의 두 발을 잘라 버리는 엽기적인 인권유린 현상에도 현정부는 눈을 감고 있다. 단 한 사람의 구속을 막기 위하여 헌정 초유의 지휘권 발동할 정도로 인권에 투철한 현정부다. 그런데 그 정부가 북한 주민에 대한 인권 아니 생명권 탄압에는 눈을 감으면서까지 김정일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배려하고 있다가, 이제는 북한을 위하여 영토조항까지 손대려 하니 해도 너무 한다.

헌법의 영토조항이 북한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고쳐도 되는 것인가. 단지 북한을 적대적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에 불과한가.

영토조항은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라는 역사적인 상징성을 표현하고 있다. 이 점을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국가의 정체성(identity)과 관계되는 핵심 문제다. 그리고 영토조항은 헌법체계 면이나 정치·외교 면에서 그 어떤 헌법조항보다도 중차대하다. 단순히 북한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존폐를 거론할 수 있는 수준의 조항이 아니다.

우선, 헌법의 영토조항을 개정하면 국가보안법은 무력화된다. 하지만 현정부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려고 목하 노력 중인 상황이라, 영토조항을 수정하면 국가보안법의 존립근거를 상실한다는 지적은 하지 않겠다. 폐지되어야 마땅할 법이 그 근거를 잃는다고 현정부 인사들이 눈 하나 깜박할 리 없기 때문이다. 다만, 영토조항을 통하여 국가보안법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라면, 이는 정도(正道)가 아니라는 점만 지적하겠다.

무엇보다도 영토조항을 고치면 통일의 근거가 약해진다. 얼핏 보면, 현행 영토조항은 냉전시대의 유물로서 북한의 실체를 부정하는 것이므로 영토를 남한으로 한정하면 남북간의 평화정착에 기여하여 통일을 앞당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정장관은 납북기본합의서와 영토조항이 서로 상치된다고 주장하지만 옳지 않다. 헌법재판소가 1993년에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북한은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인 동시에 반국가단체라는 성격도 함께 갖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고, 또 원리적으로도 그렇다. 우리가 북한을 동반자로 대우할 것인가 반국가단체로 취급할 것인가 하는 것은 북한이 하기에 달려 있다. 북한이 남한과 공존을 모색한다면 동반자가 되고, 적화를 기도한다면 반국가단체가 되므로 우리로서는 양면을 다 상정해 놓고 대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행 영토조항 아래에서 통일은 논리 필연적인 귀결이다. 그러나 이북이 영토에서 제외되면 그렇지 않다. 북한지역이 우리 영토라면, 북한주민은 우리 국민이다. 따라서 당연히 통일되어야 하고, 탈북민은 우리 국민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반면, 이북이 우리의 영토가 아니라면 북한은 외국이고, 북한주민은 외국인이 된다. 이 경우의 통일은 국가와 국가의 합병을 의미한다. 분단의 해소는 필연적이지만, 국가의 합병은 필연적이 아니다.

남북한 주민이 하나의 민족이기 때문에 국가 대 국가의 관계라 하더라도 통일의 필연성은 동일하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동독과 서독이 통일하는 것과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합병하는 것이 같겠는가. 동서독의 통일에 대하여 전세계가 그 당위성을 인정하였지만, 같은 독일민족이지만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합병에는 동일한 당위성이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사태는 북한정권의 붕괴시에 발생할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북한의 붕괴가능성을 점친다. 북한이 붕괴될 경우 중국군이 북한으로 밀고 들어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러한 경우 북한이 우리 영토가 아니라면, 우리는 중국군의 진입을 제지할 근거가 없다. 북한은 우리에게 외국이기 때문이다.

북한정권 붕괴시 중국군이 북한에 진입하면, 통일은 멀어진다. 중국은 북한에 진입하여 자신들의 꼭두각시 정권을 세워 북한을 간접 지배함으로써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직접 국경을 맞대는 일을 피하고자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통일은 언제가 될지 가늠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정장관은 헌법에 중국은 영토조항이 있지만 미국과 일본은 영토조항이 없다는 예도 들고 있다. 조사를 하였으니 왜 중국이 미·일과 달리 영토조항을 가지고 있는지 그 이유도 알 터이다. 중국은 분단국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대만도 중국의 일부라는 전제하에 “하나의 중국”이라는 대원칙을 세워놓고 있기 때문에 영토조항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영토조항에서 우리가 참고하여야 할 대상은 우리와 처지가 다른 미·일이 아니라 같은 분단국인 중국이라는 사실, 진정 모르고 하는 소린가?

현정부 인사들이 반미 친중적인 경향이 있던데,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른 영토조항 만은 굳이 중국을 외면하고 미·일의 헌법을 기웃거리는 이유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북한 역시 한반도 전체가 자신들의 영토인데 미제의 괴뢰가 남반부를 점령하고 있다고 여긴다. 백보 양보하더라도 남북한이 서로 한반도 전체가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경쟁한다고 볼 수 있는데, 남한 혼자 이북의 영토를 포기하면 어떻게 되는가. 북한지역의 우리 영토는 김정일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선물로 주기에는 너무도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