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내용은 2004. 5월 헌법재판소의 탄핵기각 결정 이후에 어느 잡지에 기고하였던 것입니다.

                                              탄핵사유의 중대성에 관하여

           홍익법무법인 구성원변호사 이    헌
  

1. 머릿말

헌정 사상 초유라고 일컬어지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을 심리한 헌법재판소는 지난 5. 14. "탄핵결정에 필요한 재판관의 수의 찬성을 얻지 못하였다."고 하여 기각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막판에 언론에서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었던 소수 의견 제시여부에 관하여 "헌법재판소법상 탄핵심판 사건에 있어 재판관 개개인의 개별적인 의견 및 그 의견수 등은 결정문에 표시할 수 없다"고 하여 9명의 재판관들이 제시한 다수 의견과 소수 의견이 몇 명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탄핵절차는 종료되었으나, 종전에 탄핵지지와 반대를 놓고 국민 각자의 성향에 따라 치열하게 대립되었던 갈등과 논란은 헌법재판소의 이 번 결정으로 말미암아 소수의견의 수를 놓고서 또 다시 각자의 성향과 입장 차이에 따라 그 논란을 재연될 수도있을 것이다. 소수의견에 관하여 탄핵인용과 기각의 비율이 2:7이라거나 3:6 또는 3:5:1(1명은 각하)라는 보도와 주장이 분분하게 제기되고 있다. 특히 탄핵을 지지하였던 입장에서는 헌법재판소의 이 번 결정의 문맥으로 보아 탄핵결정에 필요한 재판관의 수의 찬성을 얻지 못하였다고 하였으니 파면결정에 찬동한 재판관들이 5명으로 다수이지만 탄핵결정에 필요한 재판관의 수인 6명의 찬성을 얻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러한 입장에 의한다면 탄핵결정에 찬성하는 재판관들의 의견이 도리어 다수의견이라는 주장인 셈이다.

헌법재판소는 이 번 결정을 통하여, "피청구인(탄핵심판에서 노 대통령을 지칭함)의 특정정당(열린우리당)지지 발언은 선거법(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하였고, 재신임 국민투표 발언 등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의 헌법 수호 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통령에 대한 파면은 더 이상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여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에 한하여야 한다."면서, "피청구인의 헌법 및 법률 위반행위는 파면결정을 하여야 할 정도로 중대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여 기각이유를 밝혔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취지는 노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인 선거법에 위반하였지만 파면할 정도로 중대한 사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대통령의 잘못은 있으나 파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탄핵심판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도와 그 영향이 엄청났고, 그 헌정사적의 의의는 두말할 필요가 없으며, 탄핵심판의 심리과정에서 여러 쟁점별로 쌍방의 법리적인 주장이 치열하게 오고갔다. 그러므로 소수의견의 수에 대한 논란 이상으로 중요한 것으로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나타난 바와 같이 헌법에서 정한 탄핵사유가 과연 중대한 사유에 해당되어야 하는 것인지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나타난 바와 같이 헌법 제65조 제1항에서 탄핵사유에 관하여 규정한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한 때"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헌법재판소법 제53조 제1항에서 "탄핵심판청구가 이유있는 때에는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을 당해 공직에서 파면하는 결정을 선고한다."고 규정함에 있어서 "탄핵심판청구가 이유있는 때"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인 것이다.

나아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나타나 바와 같이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유가 중대한 사유이어야 한다면, 이 번 사건에서 헌법재판소에서 인정한 노 대통령의 헌법과 선거법 위반 사실이 과연 중대한 사유에 해당되지 않은 것으로 본 것이 타당한지에 관한 논의도 제기될 필요성이 있다. 헌법재판소의 이 번 결정에 대하여 헌법과 법률위반을 인정하면서도 탄핵사유가 아니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면서 논리적인 모순을 지적하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탄핵사유의 중대성에 대한 일반론과 함께 외국의 경우, 그리고 탄핵심판 과정에서 탄핵사유의 중대성에 관하여 국회소추위원측과 피청구인측 사이에 오고간 논란 등을 중심으로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유가 중대한 것이어야 하는지, 그렇다면 대통령의 법위반행위는 중대한 사유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지 등을 살펴 보기로 한다.

2. 탄핵사유의 중대성에 관한 일반론

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나타난 탄핵사유의 중대성

 헌법재판소는 이 번 결정에서 탄핵사유의 중대성에 관하여 "헌법재판소법 제53조 제1항은 헌법 제65조 제1항의 탄핵사유가 인정되는 모든 경우에 자동적으로 파면결정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문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이러한 해석에 의하면 피청구인의 법위반행위가 확인되는 경우 법위반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헌법재판소가 파면결정을 해야 하는바, 직무행위로 인한 모든 사소한 법위반을 이유로 파면을 해야 한다면 이는 피청구인의 책임에 상응하는 헌법적 징벌의 요청, 즉 법익형량의 원칙에 위반된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법 제53조 제1항의 '탄핵심판청구가 이유있는 때'란 모든 법위반의 경우가 아니라 단지 공직자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법위반의 경우를 말한다"고 하였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유가 될만한 중대한 사유에 대한 예시로서, "대통령이 헌법상 부여받은 권한과 지위를 남용하여 뇌물수수, 공금의 횡령 등 부정부패를 하는 경우, 공익실현의 의무가 있는 대통령으로서 명백하게 국익을 해하는 활동을 하는 경우,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하여 국회 등 다른 헌법기관의 권한을 침해하는 경우, 국가조직을 이용하여 국민을 탄압하는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 선거의 영역에서 국가조직을 이용하여 부정선거운동을 하거나 선거의 조작을 꾀하는 경우"를 들었다.

나. 헌법재판소의 자료에 나타난 탄핵사유의 중대성

 (1) 1998. 8월 헌법재판소에서 발간한 헌법재판실무제요에서는, 헌법 제65조 제1항에서 탄핵사유로 정한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한 때"에서 헌법이나 법률이란 형식적인 의미의 헌법과 법률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통설에 의하면 여기에 성문헌법 뿐만 아니라 법률과 동등한 효력을 가지는 성문헌법이나 헌법관습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한 때에 국한되기 때문에 헌법이나 법률의 해석을 그르친 행위, 위법차원이 아닌 부당한 정책결정행위, 정치적 무능력으로 야기되는 행위 등은 탄핵 사유가 되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직무집행에 있어서의 위헌이나 위법행위가 반드시 고의나 과실에 의해서 발생한 경우만이 탄핵사유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법문은 단순히 "위배한 때"라고만 하고 있기 때문이고, 다수설에 의할 때 법의 무지로 의한 경우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 헌법재판실무제요에서는 탄핵사유가 중대한 사유이어야 한다는 등 탄핵사유의 중대성에 관한 언급이 없다(헌법실무제요 제230면 내지 제237면).

 (2) 그리고 2001. 8월 헌법재판소가 한국공법학회에 연구용역을 의뢰하고 발간한 "탄핵심판제도에 관한 연구"(이승우 경원대 교수외 2인 작성)에서는, 탄핵사유는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 행위이어야 하는데, 여기서 헌법과 법률에 위배하였다 함은 주로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과 법률상의 권한을 유월(逾越)하거나 작위·부작위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행위를 명시적으로 예시한 입법례도 있으나 우리 헌법은 이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고 단지 포괄적으로 규정해둠으로써 해석론으로 맡겨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과 법률을 위배한 때"라는 규정을 문언 그대로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 모든 행위를 탄핵소추사유로 볼 것인가에 관해서는, 형사상의 범죄 뿐만 아니라 헌법 또는 법률에 위배되는 전부의 행위를 탄핵사유로 보는 견해와 탄핵제도의 성질로 보아 그 위법행위가 명백하고도 중대함을 요한다고 보는 견해가 대립한다는 것이다.

위 연구의 결론에서는 탄핵심판은 일반 재판작용과는 달리 헌법보호의 기능을 더 중시하고 있으므로 탄핵사유를 헌법과 법률에 대한 중대한 위배로 제한하여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며, 특히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고 보고 있다. 그 이유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에서 가중된 정족수가 요구된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여기서 위배의 중대성은 위배의 고의 또는 과실과 같은 주관적 정신적 요소의 유무로 따질 것이 아니라, 위배의 결과로 나타난 국민의 기본권, 국가의 안전, 헌법질서 등에 끼친 해악의 정도를 기준으로 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이 번 결정은 위 연구에서 바람직한 해석론과 그 견해를 같이 한다고 할 것이다.
 
다. 외국의 탄핵제도 및 탄핵사유

 (1) 영국

영국의 탄핵제도는 별도의 독립된 법률이 존재하지 아니하고 오랜 기간에 걸쳐 확립된 헌법적 관행으로 규율되고 있다. 영국의 탄핵제도는 국왕이 선임한 각료로 하여금 의회에 대하여 책임을 지도록 만들어서 절대왕권 대신에 의회우위를 확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의회내각제가 확립됨에 따라 탄핵의 효용성이 줄어들게 되었다. 판례에 나타난 탄핵사유로는 고관들의 반역죄(treason), 중죄(felony), 직무태만(misprision), 경죄(misdemeanor), 직권남용(abuse of power), 수뢰죄(bribery), 때로는 사기, 폭력, 살인 등으로 그 유형이 매우 다양하다. 탄핵사유에 대하여는 "고도의 범죄와 경죄(high crimes and misdemeanors: 여기서 high crimes이란 법정형이 높은 범죄가 아니라 정부제도에 대한 범죄로서 소위 고도의 정치적인 범죄를 의미한다고 함)"라는 개념으로 정립되고 있다. 이러한 이론에 따라 기소할 수 있는 모든 범죄를 탄핵할 뿐만 아니라, 기소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해서도 탄핵할 수 있는 것으로 탄핵사유를 폭 넓게 인정하고 있다.

 (2) 미국

미국의 탄핵제도는 그 연혁에 있어 영국의 선례를 계승하였으나, 연방헌법의 기초자들은 영국의 관행을 그대로 채용하지 않고 영국과는 다른 특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래서 헌법상 엄격한 3권분립을 전제로 하여 행정부와 사법부에 속하는 공직자의 공직자의 부정행위를 처벌하는 특별한 권한을 두 기관으로부터 독립되어 있고 선거를 통하여 국민에게 직접 책임을 지는 기관인 의회가 행사하는 탄핵제도를 고안하였다.

미국의 탄핵제도는 헌법상 통치구조에 있어서 행정부와 사법부에 대한 의회의 유효한 통제수단으로 발전하여 온 것으로서, 탄핵사유로 반역죄, 수뢰죄 및 기타의 중대한 범죄와 비행(high crimes and misdemeanors)을 명문화하고 있다. 미국의 헌법제정과정에서 탄핵의 대상과 사유에 관하여 많은 논의가 있었으나 결국 탄핵의 목적은 일반의 형사범죄에 대한 법적 처벌이 아니라 정치적 범죄에 대한 정치적 처벌에 있다고 보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연방헌법상 탄핵조항에 있어서 중대한 범죄 및 비행은 형사범이라고 할 수 없는 범죄 및 기소의 대상이 되지 않는 범죄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다만 앤드루 존슨 대통령이나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건에 나타난 바와 같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대통령의 권한남용이 명백한 경우에 헌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발동되는 의회의 마지막 통제수단을 고려할 때, 법관에 대한 경우보다 매우 신중하여야 한다는 견해가 유력하게 제기되었다.

 (3) 프랑스

프랑스의 탄핵심판제도는 대혁명 이후 영국의 오랜 전통을 모방하여 적용하였다. 대통령 이외에 정부구성원에 대한 탄핵사유가 일반 형법상 중죄와 경죄를 그 직무수행과 관련하여 범하였을 것이라고 하여 매우 광범위하게 규정하고 있는 반면,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유는 헌법에서 "대역죄"라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이루어진 일은 없다.

 (4) 독일

독일의 탄핵심판제도는 헌법수호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여 권력분립의 원칙 및 연방국가의 원칙에 따라 연방의회와 연방참사원에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권을 주고(법관에 대한 탄핵소추권은 연방의회), 헌법보장적인 기능을 담당하기 위하여 연방헌법재판소에 탄핵재판권을 주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유는 "기본법 또는 기타의 연방법률의 고의적 침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헌법질서의 유지를 일차적인 목적으로 하는 헌법수호장치라고 보기 때문에 학설에서는 그 위반행위가 중요한 것이어야 한다고 본다고 한다. 이는 연방헌방재판소법에서 연방헌법재판소에게 헌법과 법률위반의 고의성을 인정할 때에는 대통령의 파면을 반드시 선고하여야 할 의무를 주고 있지 아니하고 오늘날 헌법상 승인되고 있는 비례의 원칙(참새를 대포로 쏘지 말라.)을 토대로 한 주장이기도 하다.

 (5) 일본

일본 헌법은 탄핵의 대상으로 재판관만을 인정하고 있다. 탄핵사유로 헌법에 심신의 고장(故障) 이외에 재판관을 파면하기 위하여 공적인 탄핵이 필요하고, 이를 위하여 국회는 탄핵재판소를 설치하며, 탄핵재판소는 양원으로 조직한다고 규정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재판관탄핵법에 위임하고 있다.

(6) 최근 외국의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례

얼마전인 2004년 4월 리투아니아 팍시스 대통령에 대하여 "측근비리 방치, 불법자금 수수" 등이 탄핵사유가 되었고, 국회의 의결을 통하여 탄핵이 되었는데, 본인은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탄핵할만큼 중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1년 인도네시아 압둘라만 와히드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유는 "부정부패와 국정운영실패"이었고, 2001. 7월 의회에서 탄핵을 당하여 물러나게 되었다. 2000년 페루의 후지모리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유는 "부정부패"이었고, 탄핵이 발의되자 사임하였으며, 같은 해 필립핀의 조지프 에스트라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유는 "뇌물수수"이었고, 국회표결 전에 사임하였다. 1998년 파라과이 아울 쿠바스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유는 "정적에 대한 암살 연루"이었고 탄핵대상이 되자 사임하였다. 1989년 베네주엘라 카를로스 페레스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유는 "1,700만달라의 비자금조성"이었다.

최근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이루어진 국가에 대한 탄핵사유를 살펴 보면, 직무집행과 관련된 부도덕이나 정치적 무능력, 정책결정상의 과오 등도 탄핵대상이 되었다. 최근에 와서 세계 각국의 국가원수에 대하여 국정운영실패 등을 사유로 탄핵이 제기되자 탄핵결정 이전에 국가원수 스스로 국가의 위신이 추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사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라. 학설의 검토

(1) 헌법 제65조 제1항에서 정한 탄핵사유로서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한 때"에 관하여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한 모든 행위가 탄핵대상인지, 아니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 또는 법률에 대한 중대한 위반행위만이 탄핵대상인지에 관하여 학설은 대립되고 있다.

(2) 우선 형사상의 범죄 뿐만 아니라 헌법 또는 법률에 위배되는 전부의 행위를 탄핵사유로 보는 견해(박일경, 유신헌법, 박영사 1972년)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하는 행위를 한 경우에 위배행위가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이런 위법행위가 중대성을 가져야 할 필요는 없으며 이러한 중대성 여부는 파면여부를 결정할 때 고려할 수 있는 사항일 뿐이라는 견해(정종섭, 헌법재판강의, 박영사 2003)가 있다.

이에 대하여 탄핵제도의 성질로 보아 그 위법행위가 명백하고도 중대함을 요한다고 보는 견해(한태연, 헌법학, 법문사 1979년)가 있고, 앞 서 본 바와 같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 관한 연구에서도 중대한 위반행위만이 탄핵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이승우 경원대 교수외 2인).

 (3) 한편 김철수 교수는 헌법학개론에서 이에 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았으나 최근 탄핵정국과 관련하여 한 월간지와 인터뷰를 통하여 헌법에는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과 법률을 위배한 때에 탄핵소추를 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중대한 위헌·위법행위를 했을 때에만 탄핵소추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권영성 교수는 종전 헌법학원론에서는 탄핵사유가 중대하고 명백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가, 최근 개정된 2004년판 헌법학원론에서는 이 부분이 삭제되었다.

(4) 이와 같이 탄핵사유의 중대성에 관한 학설을 종합하여 본다면, 문리해석에 따라 헌법 또는 법률에 위배되는 전부의 행위를 탄핵사유로 보는 견해가 약간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아쉽고도 불만스러운 일은 탄핵문제를 다룬 언론에서는 탄핵에 관한 일반적인 보도태도가 그리하였던 것처럼, 마치 탄핵소추사유가 중대하고 명백하여야 한다는 것이 헌법학자들의 다수설인 것처럼 보도하였다는 사실이다.

3. 탄핵사유의 중대성에 관한 양측의 주장

가. 피청구인측 주장

언론에서 "대통령 변호인단"이라고 불리우던 피청구인대리인측은 의견서를 통하여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사유로서 헌법과 법률의 위배는 중대하고도 명백한 경우에 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법무부나 대한변협, 민변 등은 마치 피청구인 대리인의 지위에 있는 것처럼 이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내용으로 탄핵사유의 중대성에 관한 주장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1)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국가원수로서 막중하고 광범위한 권한을 가진다는 점에서 다른 탄핵대상자와 탄핵의 요건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헌법에서는 대통령의 경우 내란죄,외환죄을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 재직중 형사소추를 받지 않는 특권과 탄핵소추에 의결요건을 가중하고 있는 헌법정신에 비추어 탄핵소추의 실체적 사유에 대하여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 헌법재판소법 제53조 제1항에서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청구를 인용하는 경우 사안의 경중에 따라 선택할 여지 없이 파면의 결정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은 탄핵사유가 파면이라는 제재를 가할 정도로 중대한 것이어야 함을 전제로 한 다는 것이다, 또 대통령의 직무는 국정전반에 걸쳐 광범위하므로 그만큼 법위반의 위험성이 따를 수 밖에 없는데, 중대·명백하지 않은 위법행위까지도 탄핵사유로 인정하는 것은 법치주의의 원칙의 한 요소인 과잉금지의 원칙 내지 비례의 원칙에고 반한다는 것이다.

(3) 절대군주에 대한 통제수단으로 발전한 탄핵제도는 현대정치의 상황에서 국회 다수당의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공격이나 대통령의 권한행사에 대한 부당한 간섭 등으로 남용될 소지가 크므로 탄핵제도가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탄핵소추사유는 중대,명백한 위법행위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대통령의 중대·명백하지 않은 위법행위까지도 탄핵소추사유로 삼는다면 대통령의 직무집행에 대한 다른 국가기관의 통제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되어 권력분립의 원칙에도 반하고 비교법적으로 보더라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피청구인 대리인측의 주장은 우리 헌법상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유로서 헌법 또는 법률을 위배한 때라고 함은 모든 위헌·위법행위를 포괄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보아 대통령직을 그만두게 할 정도의 중대하고 명백한 위법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 국회소추위원측 주장

국회소추위원측은 소추위원 의견서 등을 통하여 탄핵사유의 중대성에 관한 피청구인측 주장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반박하였다.

(1) 우리 헌법 제65조 제1항은 "대통령 등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한 때"라고 탄핵사유를 규정하고 있고, 위반행위의 중대성을 그 요건으로 하고 있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 등이 직무집행과 관련하여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하는 행위를 한 경우에 그 위반행위가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이러한 위반행위가 중대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 헌법의 규정에 충실한 해석이라는 것이다.

(2) 1948. 6. 26. 제헌국회 18차 본회의의 속기록을 근거로 하여 우리나라 헌법의 기초자들은 56년전에 제헌헌법을 기초하면서 구체적인 탄핵의 유형에 관하여, "대통령으로서 직무수행을 성실하게 하지 아니하는 것이나 자신이 임명한 공직자에 대한 지시감독을 제대로 하지 아니한 것"도 탄핵사유가 된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헌법의 탄핵제도의 모범으로 삼은 미국의 탄핵제도에서는 고도의 범죄 및 비행(high crimes and misdemeanors)을 탄핵사유라고 하고 있으므로, 대통령의 법적 위반행위가 아닌 정치적 위반행위도 탄핵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헌법상의 대통령 탄핵사유는 우리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는 헌법수호의 의무 등을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를 하거나 그러한 의무를 정성을 다하여 진실되게 수행하지 아니하는 것이고, 중대성 여부는 따로 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야구심판의 예를 들어 투수가 던진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면 심판은 응원 관중을 의식하여 볼을 선언할 수 없는 것이고, 헌법에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에 관하여 재적의원의 3분의 2로 의결정족수를 가중한 것이나, 소추의결로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되는 것은 형사재판의 무죄추정의 원칙과 정반대이므로 탄핵사유의 중대성은 정치기관인 국회가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는 국회의 탄핵의결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적법하게 이루어졌느냐, 탄핵사유에 기재된 피청구인의 헌법이나 법률위배행위가 있었느냐 하는 부분만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3) 설사 대통령에 대한 탄핵제도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하여 탄핵사유를 중대한 위반행위로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이 헌법상의 의무를 위반하거나 불성실하게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수행하는 것은 다른 위반행위와 달리 헌법이나 법률에 중대하게 위배된 경우임이 명백하다는 것이다.

(4) 피청구인의 선거법위반행위는 교통법규 위반행위와 달리 그 직무집행과 관련될 뿐 만 아니라, 국민의 대표기관을 선출하는 절차와 관련되는 것으로서 결코 그 위반이 경미하다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선거법위반행위가 반복적으로 행하여지고 선거과정을 총괄하는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을 납득할 수 없다며 반발한 행위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이다. 그리고 헌법 제69조의 대통령 취임선서의 헌법준수의무 중 다른 국가기관의 권위를 존중하고 그 기능과 권한을 침해하여서는 아니되는 의무에 위반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탄핵사유에 해당하는 것이다.

국회소추위원측의 주장은 대통령이 직무집행과 관련하여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하는 행위를 한 경우에 그 위반행위가 존재하는 것으로 탄핵사유로 충분하고 이러한 위반행위가 중대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탄핵사유는 모두 대통령의 헌법상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서 각 사유마다 충분히 헌법상 탄핵사유가 되고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에 중대하게 위배된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이러한 국회소추위원측 주장을 배척하고 피청구인측의 주장을 수용하였다.

4. 맺는 말

가.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소법 제53조 제1항의 '탄핵심판청구가 이유있는 때'란 모든 법위반의 경우가 아니라 단지 공직자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법위반의 경우를 말한다고 하여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유로서 헌법 또는 법률을 위배한 때라고 함은 모든 위헌·위법행위를 포괄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보아 대통령직을 그만두게 할 정도의 중대하고 명백한 위법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나. 그러나 탄핵심판절차는 대통령을 포함한 행정부와 사법부의 고위공직자에 의한 헌법침해로부터 헌법을 수호하고 유지하기 위한 제도이고, 공직자가 직무수행에 있어서 헌법에 위반하는 경우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을 추궁함으로써 헌법의 규범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 그 목적과 기능인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탄핵제도는 "탄핵심판청구가 이유있는 때에는 --- 파면하는 결정을 선고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독일의 탄핵제도와는 달리 헌법재판소에게 헌법과 법률위반의 고의성을 인정할 때에는 대통령의 파면을 반드시 선고할 의무를 주고 있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헌법재판소의 이 번 결정에 나타난 법익형량의 원칙이나 비례의 원칙이 도출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펴 본 외국의 입법례와 사례 및 우리나라 헌법학자들의 다수학설에 의한다면, 대체적으로 탄핵사유에 관하여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하는 행위를 한 경우에 위배행위가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이런 위법행위가 중대성을 가져야 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므로 이 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우리나라 탄핵심판의 본질과 기능, 헌법과 법률의 관계규정 및 외국의 입법례나 사례 등에 나타난 일반 법리나 해석론에 배치된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다. 특히 대선이나 총선 및 인사청문회에서 우리 국민과 언론이 보여준 것처럼 고위공직자에게 노블리스 오브리제(nobless oblige)라고 일컬어지는 엄격한 도덕적인 기준을 요구하고 있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대통령을 포함하여 고위공직자가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한 행위를 하였다면 그 자체가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의 법위반에 대하여 또 다시 중대성 여부를 따진다는 것은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논리를 구사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라.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결정의 소결론에서 노 대통령의 법위반이 헌법질서에 미치는 효과를 종합하여 본다면, 대통령의 구체적인 법위반행위에 있어서 헌법질서에 역행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사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평가될 수 없다고 하였다. 따라서 파면결정을 통하여 헌법을 수호하고 손상된 헌법질서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 요청될 정도로 대통령의 법위반행위가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없고, 또한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민의 신임을 임기 중 다시 박탈해야 할 정도로 국민의 신임을 저버린 경우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없으므로 대통령에 대한 파면결정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결정을 통하여 대통령의 직무집행에 있어서 법위반을 인정하였다. 즉 대통령의 언론사와의 인터뷰에 관하여 기자회견도 대통령의 직무집행 과정이고, 선거가 임박한 시기에 기자회견을 통하여 반복적으로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국민에게 지지를 호소한 것은 선거법위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중앙선관위의 결정에 대하여 납득할 수 없고 과거 선거법은 개혁되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은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법의 정당성과 규범력을 문제삼는 것으로 법치국가의 정신에 반하고 헌법수호의 의무에 위반하였다는 것이다. 또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한 것은 국민투표제도를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인 도구로 남용해서는 안된다는 헌법적 의무에 위반하였다는 것이다.

바.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서 3.15 부정선거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할 정도로 부정선거에 관한 피맺히고 쓰라린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로서는 현직 대통령의 선거법위반 부분이 결코 경미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이 법치주의에 반하는 언행을 하거나, 헌법 제도를 자신의 권력유지 도구로 삼은 헌법수호의무위반행위는 제헌헌법에서 이미 탄핵소추사유로 예정된 것으로서, 결단코 중대한 행위가 된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대통령은 탄핵소추 의결 직전의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선거법위반 부분에 대하여 사과를 하지 않겠다고 하여 총선을 위하여 탄핵을 유도한 측면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총선과정에서 대통령측 특정 정당은 "의회쿠데타"라거나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을 어떻게 탄핵하느냐"는 구호를 내세우는 등 탄핵정국을 이용하여 결국 원내 과반수 확보에 성공하였다. 이 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 인정한 대통령의 헌법과 선거법 위반사실은 총선 과정에서 제대로 공론화되지 못하였고, 그리하여 총선 결과가 대통령측 특정 정당의 승리로 나타났다. 대통령의 법위반행위가 공론화된 상태에서 총선이 이루어지고 대통령측 특정정당이 패배하였다면 헌법재판소는 과연 이 번과 같은 결정을 하였을지 의문이다. 

사. 그렇다면 헌법재판소의 이 번 결정에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사유 중 헌법와 선거법을 위반한 사실을 인정한 이상 그 법위반행위는 중대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이 번 결정이 헌법과 선거법에 위반하였지만 파면사유로 볼 수 없다는 이 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대체적으로 실리는 대통령에게 명분은 국회에 주었고, 또한 대통령의 행동규범을 제시하면서, 국민에게는 법치주의 근본을 알려주었다 등의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하여 일반 법원리에 부합하지 아니하거나 모순된 논리를 구사한 측면이 보여진다. 특히 대통령의 파면이냐, 기각이냐를 가른 탄핵사유의 중대성에 대하여 결과적으로 살아있는 권력의 편에서 제기하는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범법행위를 한 권력에게 면죄부를 주었으며, 주권자인 국민들이 대통령의 법위반행위를 심판할 여지를 더 이상 사라지게 하거나 이를 좁게 만든 결과가 된 것은 부인하지 못할 일인 것이다. 

                                                               200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