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관련 법률의 문제

  이  헌 변호사("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사무총장 겸 총무간사)

       
1. 머리말

왜곡되거나 은폐된 과거사의 진상규명을 목적으로 지난 해 5월 제정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이하 '과거사법'이라고 함)이 시행됨에 따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위원회'라고 함)가 지난 연말에 구성되어 활동을 개시하였다.

새로 시행된 과거사법에 의하면, 독립기관으로 조직되는 과거사위원회는 항일독립운동,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 유린과 폭력, 학살, 의문사 사건 등의 왜곡 또는 은폐된 진상을 최장 6년 동안 조사하게 된다.

그런데 최근 과거사위원회가 다루게 될 과거 국가 공권력에 의한 반인권적 범죄의 민형사상 처리방향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그 처리방향의 주요내용은 현재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범죄에 한하여 가해자의 재임기간 중 시효진행을 정지시키고, 과거사위원회의 조사결과를 재심청구 사유로 인정하며, 피해자의 국가배상 등 민사상 손해배상에 있어 소멸시효를 배제한다는 것이다.

과거사 문제에 대하여는 법적 처리보다는 역사적 평가에 맡겨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고, 이를 토대로 과거사법 및 관련법이 마련되었다고 할 것이다. 또 과거사 문제에 대한 법적 처리는 소급처벌이나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등의 위헌적이거나 법치주의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 문제점이 있다. 그래서 역사적 평가를 입법목적으로 하는 과거사법이나 관련법에 대하여 법적 문제를 논의할 여지가 없어야 하고, 나아가 과거사 문제에 대하여 민형사상 처리방향 등 법적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라고 본다.

본 발제문에서는, 과거사 관련 제반법률의 기본법이고 할 수 있는 과거사법에 나타난 여러 법률적 문제를 살펴본 후, 최근 과거사에 대한 민형사상 처리방향에 관련되는 법률적 문제로서 공소시효 배제와 재심, 소멸시효 등에 관한 사항을 살펴보기로 한다.

2. 과거사법에 관하여

가. 입법경위

과거사법은 2004. 8월경 여야간 독자적인 법안으로 마련된 후, 조사범위와 조사위원회 구성, 조사위원 자격조건 등에 대한 이견으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으로 본회의에 계류되었고, 2005. 5. 3. 여야간 극적인 합의로 국회를 통과하였다.

이에 대하여 과거사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일부 세력에서는, "누더기악법"이라고 하여 비판하면서, 과거사법의 근본취지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독소조항의 삭제 등 전면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나. 제정이유와 주요내용

과거사법의 제정이유는 "항일독립운동,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하여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하고자 한다"는 것이다(법 제1조). 주요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진실규명의 범위(법 제2조)
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는 일제 강점기 또는 그 직전에 행한 항일독립운동, 일제 강점기 이후 이 법 시행일까지 우리나라의 주권을 지키고 국력을 신장시키는 등의 해외동포사, 1945년 8월 15일부터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에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상해·실종사건, 그 밖에 중대한 인권침해사건 및 조작의혹사건과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시까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대한민국을 적대시하는 세력에 의한 테러·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등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도록 함.
② 진실규명의 범위에 해당하는 사건이라도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은 제외하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의결로 민사소송법 및 형사소송법에 의한 재심사유에 해당하여 진실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예외로 하도록 함.

(2)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설치 등(법 제3조, 제4조 및 제10조)
① 조사대상 선정 및 그에 따른 조사 개시 결정, 조사의 진행, 조사결과 진상규명 결정 및 진상규명 불능결정 등의 업무를 독립하여 수행하도록 하기 위하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두도록 함.
② 위원회는 상임위원 4인을 포함한 15인의 위원으로 구성하되, 상임위원 2인을 포함하여 국회가 선출하는 8인, 상임위원 2인을 포함하여 대통령이 지명하는 4인과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을 각각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함.
③ 위원회의 위원은 국회의원 또는 지방의회의원, 교육공무원을 제외한 다른 국가기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 등의 직을 겸하거나 업무를 할 수 없고,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활동에 관여할 수 없도록 함.

(3) 진실규명의 신청(법 제19조 및 제20조)
희생자, 피해자 및 그 유족 등은 이 법 시행일부터 1년 이내에 신청인의 성명 및 주소, 신청의 취지 등을 기재한 문서로 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함.

(4) 진실규명 조사(법 제21조 내지 제23조)
① 위원회는 진실규명 신청 내용이 그 자체로서 명백히 허위이거나 이유없다고 인정되는 등의 각하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조사개시결정을 하고, 지체없이 그 내용에 관하여 필요한 조사를 하도록 함.
② 위원회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서 진실규명사건에 해당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고 진실규명이 중대하다고 판단되는 때에는 직권으로 조사할 수 있도록 함.
③ 위원회는 조사를 수행함에 있어서 조사대상자 및 참고인에 대하여 진술서 제출요구, 출석요구·진술청취와 조사대상자·참고인 및 관계기관 등에 대하여 관련자료 또는 물건의 제출요구, 제출된 자료의 영치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함.

(5) 동행명령(법 제24조)
위원회는 출석요구를 받은 자중 반민주적·반인권적 공권력의 행사 등으로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에 관한 결정적 증거자료를 보유하거나 정보를 가진 자가 정당한 사유없이 3회 이상 출석요구에 응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위원회의 의결로 동행할 것을 명하는 동행명령장을 발부하고, 위원회의 직원으로 하여금 이를 집행하도록 함.
 
(6) 조사기간(법 제25조)
위원회는 위원회가 구성되어 최초의 진실규명 조사개시 결정일 이후 4년간 진실규명활동을 하되, 동 기간 이내에 활동을 완료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2년 이내의 범위에서 그 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함.

(7) 희생자를 위한 특별사면·복권의 건의(법 제37조)
위원회는 진실이 은폐되거나 왜곡됨으로써 유죄판결을 받은 자와 법령이 정한 바에 따라 자격이 상실 또는 정지된 자에 대한 특별사면과 복권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도록 함.
 
(8) 완전한 진실을 고백한 가해자에 대한 화해조치(법 제38조)
진실규명의 과정에서 가해자가 가해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진실규명에 적극 협조하고, 그 인정내용이 진실에 부합하는 경우 위원회는 가해자에 대하여 수사 및 재판절차에서 처벌하지 아니하거나 감형할 것을 관계기관에 건의할 수 있도록 하고, 형사소송절차에 의하여 유죄로 인정된 경우에는 특별사면 및 복권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도록 함. 

다. 과거사법에 대한 법적 검토

(1) 입법목적(법 제1조)

- 과거사법의 입법목적인 "진실에 바탕을 둔 진정한 화해"를 달성하기 위하여서는 과거에 왜곡되고 은폐된 진실을 철저하게 규명하여야 한다. 그리고 과거사 문제에 대한 반성과 평가가 이의제기나 의문의 여지가 없도록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토대하에서 비로소 과거사법이 추구하는 입법목적인 진정한 국민 화해와 통합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과거사법의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관건은, "진실규명, 반성, 평가" 등의 3가지라고 할 것인데, 결국 과거사법의 입법이나 성패는 이 3가지 관건에 대한 법적, 제도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 그런데 과거사법이 정쟁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 그래서 과거사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법 제도를 마련하는 것 보다 중요한 일은, 과거사법이 추구하는 진실에 바탕을 둔 진정한 화해, 그리고 그 진실규명의 과정 및 조사결과 등에 대하여 정치적 영향과는 무관하게 실제적인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는 일이고, 또 과거사 문제가 정쟁의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비판의 소지를 차단하는 일이라고 본다.

(2) 진실규명의 범위(법 제2조)
 
- 과거사법에서 정한 진실규명은, "일제 강점기 또는 그 직전에 행한 항일독립운동, 일제 강점기 이후 우리나라의 주권을 지키고 국력을 신장시키는 등의 해외동포사, 광복 이후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에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 광복 이후의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이나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해 발생한 사망·상해·실종사건, 그 밖의 중대한 인권침해사건과 조작의혹사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대한민국을 적대시하는 세력에 의한 테러·인권유린·폭력·학살·의문사" 등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 공권력의 행사

     그 진실규명의 범위에서 "공권력의 행사"(법 제2조 제1항 제4호)라고 함은 입법권,사법권,행정권을 행사하는 모든 국가기관의 적극적인 작위행위를 뜻하는 것으로서, 이에는 입법부작위와 같은 공권력의 불행사나 소극적인 부작위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 이외에 납북자,국군포로 등에 대한 정부 당국의 외면이나 침묵 등도 적극적 행위를 수반하지 않은한 공권력의 불행사로서 진실규명의 범위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헌법소원이나 행정소송의 대상에서 공권력의 불행사와 행정청의 부작위 등이 포함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공권력의 불행사 부분을 제외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할 것이다.

  북한,유엔군이나 소련군,중공군 및 좌우익 민간단체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 등의 사안은 위 조항의 "공권력의 행사"에 포함되지 않고, 이러한 사안은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에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민간인집단 희생사건에 해당하는 경우(같은항 제3호)와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세력이나 적대세력에 의한 테러·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에 해당하는 경우(같은항 제5호)에 있어 진실규명의 범위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 권위주의 통치시

    진실규명의 범위에서 정한 "권위주의 통치시"라는 시기를 어느 시기까지로 볼 것인지에 대한 해석의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이는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에서 공소시효의 정지사유로 규정한 바와 같이, 권위주의 정부가 종료되어 문민정부가 출범하기 시작한 시점으로서 노태우 대통령의 퇴임일인 1993. 2. 24.을 "권위주의 통치시"의 기준시점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해석상 논란이 제기되지 않도록 그 시기를 명문화하는 것이 타당하였을 것이다.

- 독소조항 주장에 대하여

    진실규명의 범위 조항에 대하여,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대한민국을 적대시하는 세력에 의한 테러,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조항과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은 제외한다'는 조항은, 과거사법의 근본취지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핵심 독소조항이라는 일부세력의 비판이 있다.

     우리나라 과거사 중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 남북대치 상황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고, 이러한 남북대치 상황에 따른 과거사 문제는 역사적으로 광범위하게 실제로 발생하였고 지금도 발생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또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에 의하여 우리나라의 헌법과 법률은 북한지역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되는 데에는 의문이 없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대한민국을 적대시하는 세력"에 관한 조항을 과거사법에 두는 것은 과거사 문제에 있어 균형성을 갖추기 위한 타당한 입법이라고 할 것이다. 아울러 진실규명의 범위로 정하는 "공권력의 행사"에서 북한 등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 등이 제외된다고 해석되는 점에 비추어 본다면, 과거사법에서 위와 같이 북한과 그 관련세력에 관한 조항을 둔 것이 과거사법의 입법취지에 반대되는 독소조항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법적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을 제외하기로 한 것은 타당한 입법이다. 그러나 과거사위원회가 진실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건을 진실규명의 범위에 포함시킴으로써 그 진실규명의 범위를 사실상 확대하여 적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오히려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또 과거사위원회가 민형사상 재심사유에 해당하여 진실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를 진실규명의 범위에 포함함으로써 법원의 확정판결을 제외하기로 한 규정을 사실상 사문화할 수 있게 한 것은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것이고, 과거사위원회로 하여금 사법부의 전속적 권한에 해당하는 재심사유의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한 헌법 제101조 등 권력분립 및 사법부 독립의 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3) 과거사위원회의 설치 등(법 제3조, 제4조 내지 제18조)

- 과거사법에서는 과거사위원회에 대한 설립근거를 마련하고 그 권한에 속하는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위원회로서 규정하고 있다. 이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진실규명의 업무가 특정 부처에 한정되지 않고, 정부로부터 분리 독립된 조사위원회로서의 위상을 부여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

- 위원회 통치

    참여정부 출범 이후에 위원회 통치라는 비난이 제기될 정도로 독립적 위원회가 난립하고 이들이 헌법적 권한을 거리낌 없이 행사하고 있는 데에 대하여, 이는 헌법 규정의 어디에도 없는 위헌적인 것으로서 법치주의에 반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의 NAP권고안과 관련하여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배치된다는 비판이 직면하자, 국가인권위에서는 "인권위의 가치판단은 인권이고 헌재의 가치판단은 헌법이므로, 그 가치판단의 기준이 다르다."고 하였던 사례가 있었다. 독립적 위원회라고 함은 단순히 정치적으로 독립되고 정부로부터 독립된 기관을 의미할 뿐이고, 헌법과 법치주의 체제로부터 독립되는 초법적 기관을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과거사법에 의하면, 과거사위원회는 재심사유 인정, 증인신문, 압수등 조사절차, 동행명령장 발부 및 집행 등의 사법적 기능을 수행하고(제2조 제2항, 제23조 제4항,제6항, 제24조),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 등 관계기관에게 적극 협조의무, 과거사위원회의 결정 및 건의를 존중할 의무를 부과하고(제33조, 제38조 제2항), 과거사위원회의 업무에 관련하여 허위신청 등의 위반행위에 대하여 형사처벌,과태료 등의 처벌 및 제재규정을 두고 있다(제45조, 제47조). 이러한 점에 비추어 과거사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은 독립적 행정위원회적 성격에 특별검사의 준사법적 성격을 가미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에 따라 과거사위원회는 단순한 독립기구가 아니라 사법권이나 국가기관로서의 기능 등 헌법적 권한을 행사하는 권력기구의 성격을 가진다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법률에 의하여 설치된 과거사위원회가 헌법적 권한을 행사하는 데에 대하여 이는 위헌적인 것이고 법치주의에 반한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러한 과거사위원회의 권력기구화는 "진실에 바탕을 둔 진정한 화해"라는 과거사법의 입법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여진다.

    과거사의 진상규명이라는 명분이 앞선다고 하더라도, 과거사위원회를 독립기관으로 규정된 취지에 따라 진실규명의 독립성과 공정 확보를 위한다는 범위내에서 과거사위원회의 권한과 기능에 대하여 제한하여 해석되고 운영되어야 마땅하다. 이를 망각하고 과거사위원회가 청산되어야 할 과거사만을 가치판단의 기준이라는 식의 초법적인 주장을 하면서, 다른 헌법기관을 무시하는 주장을 내세우거나 위임받지 않은 헌법적 권한을 함부로 행사하는 권력기구가 되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 정치적 중립성

    과거사위원회 활동의 공정한 운영을 위하여서는 정치세력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않고 정치에 개입하거나 정치활동을 하여서는 아니되는 정치적 중립성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그 정치적 중립성은 어느 한쪽에 기울어지지 않은 균형적 역사관과 이념 등을 토대로 하는 사상적 중립성을 견지하는 토대에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 특히 과거사위원회의 위원 인선에 있어 가해자측이나 피해자측 일방을 대변하거나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시비가 발생하지 않도록 그 구성에 있어서 신중하여야 할 것이다.

    이에 관하여 과거사법에서는 민·형사소송제도와 마찬가지로 그 공정성을 보장하고 사회일반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하여 '제척·기피·회피'제도를 두고 있다(제11조). 그러나 얼마전 과거사위원회 위원장등 위원의 인선에 대하여 소위 코드인사, 경도된 역사관 등의 시비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실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4) 진실규명의 조사방법(법 제23조)
 
- 과거사법에서는 과거사위원회가 조사대상 선정 및 이에 대한 조사 개시결정, 조사의 진행, 조사결과 진상규명 결정,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하게 되는데, 이를 위하여 참고인에 대한 진술서 제출요구, 출석요구와 조사대상자 및 참고인, 그 밖의 관계기관·시설·단체 등에 대한 관련자료 또는 물건의 제출요구 등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 과거사문제에 대한 평가

    과거사 문제가 대부분 시간의 경과에 따라 기록이나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고, 과거사법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과거 국가공권력에 의하여 은폐되고 왜곡된 사실이라는 특성상 자료 조사와 증거수집에 관한 접근이 어렵다는 원천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과거 사실에 대하여 무엇이 법인가를 판단하는 법원의 재판에서도 증거판단에 기한 실체적 진실을 인정하는 문제야말로 그야말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과거사법에 있어서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기록이나 자료를 통하여 과거의 실체적 진실을 철저히 규명하는 것은 법원의 재판이 비교되지 아니할 정도로 극히 어려운 일인 것이다.

    과거사위원회의 자료 조사와 증거수집 등 조사방법과 이를 토대로 한 사실인정 등 그 평가의 방법은, 진실에 바탕을 둔 진정한 화해라는 과거사법의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객관적으로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과거사위원회가 다루게 되는 국가 공권력에 의한 반인권적 행위 등 진실규명의 범위에 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 형사범죄인 사실을 고려한다면, 그 평가의 방법은 형사소송법상 증거법칙에 상응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다만 권리구제라는 측면과 기록이나 자료의 부재라는 측면을 고려하여 형사증거의 요건인 엄격한 증명을 요하는 증거법칙을 어느 정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렇지 아니할 경우에는 조사주체인 과거사위원회 위원들의 선입견이나 편향된 입장에 따라 임의로 증거자료를 취사하고 일방적으로 사실을 인정하는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일반적인 증거법칙을 무시한채 가해자측이 사망하거나 진술을 거부한다고 하여 피해자측의 일방적인 진술이나 전문진술 등을 토대로 하여 과거사에 대한 사실을 오히려 왜곡하여 인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과거사위원회의 구성에 있어서 정치적 중립성 이외에 실체적 진실규명에 경험을 가진 법관에 버금갈 정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과거사법에서는 대법원장에게 위원지명권을 부여하고, 위원 중 일정인원은 법조인을 구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제4조), 이에 따라 지난 연말에 이루어진 과거사위원회 위원 인선에서 상당수 법조인이 포함되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 과거사문제에 대한 평가기준

     과거사 문제에 있어 기존의 사실이 왜곡되고 은폐되었는지 여부에 대한 평가기준은, 기록이나 자료를 토대로 하는 사실인정이나 심증의 형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는 권리구제를 중시하여 "의심이 있을 때에는 피해자측에게 유리하게 판단할 것인지", 아니면 법적 안정성을 중시하여 "의심이 있을 때에는 판결이나 확정력의 이익, 즉 가해자측에게 유리하게 판단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과거사 문제에는 기록이나 자료의 부재, 은폐 내지 왜곡이라는 원천적인 문제가 있으므로, 엄격한 기록이나 자료의 조사를 요구하는 것은 권리구제를 포기하는 것으로서 과거사법의 입법취지에 반한다는 비난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완화된 형사증거법의 증거법칙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나, 기존의 과거사에 관하여도 사실인정의 기록이나 자료가 존재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그 기록이나 자료를 참조하여 새로운 기록이나 자료를 종합하여 사실관계를 판단하여야 하는 것이다.

    기존의 과거사에 관한 사실인정의 기록이나 자료에 의하여 인정된 사실인정이라고 하여 이를 무시하거나 무조건 배척하여서는 아니될 것이다. 특히 대부분 과거사문제에 있어 가해자 본인이나 유족 등 가해자측이 존재한다고 할 것이므로, 그 조사과정이나 평가에 있어 가해자측의 제출 자료나 주장도 소송법상 무기평등의 원리에 따라 피해자측의 그것과 대등한 수준에서 판단되어야 하는 것이다.

- 과거사문제에 대한 조사방법

    과거사문제는 과거의 잘못된 사실을 조사하고 밝혀내는 일이다. 이러한 점에서 과거사문제에 대한 조사방법에 관하여는, 확정판결에 중대한 하자가 있는 경우에 당사자의 권리 구제를 위하여 인정되는 재심제도를 참고할 수 있다고 본다.

     재심제도에 있어서, 재심사유의 유형으로 허위의 물적,인적 증거, 무고, 법관,검사,수사관 등의 관련 범죄행위 등이 증명되는 경우인 사실왜곡형(Falsa형) 재심사유가 있고, 기존의 사실적 기초를 전복할 수 있는 새로운 사실이 발견된 경우인 새로운 증거형(Nova형) 재심사유가 있다. 여기서 새로운 증거라고 함은 과거에 그 존재를 알지 못하였거나 존재를 알았어도 제출이 불가능한 증거로서 그 후에 제출이 가능하게 된 경우를 말한다. 그리고 과거에 사실인정의 기초로 사용한 증거와 새로운 증거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하는 것으로서, 과거에 사용한 증거보다 경험법칙이나 논리법칙에 따라 객관적으로 우월한 증거가치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사 조사에 있어서 위와 같은 재심사유에 관한 법리를 참고한다면, 과거사에 관한 사실이 허위의 물적,인적 증거, 무고, 국가기관의 관련 범죄행위에 기인한 것으로 드러나거나, 기존의 사실을 전복할만한 새로운 사실이 제출되었을 경우에는 기존의 사실이 왜곡되었거나 은폐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과거의 사실인정에 있어서도 그 기록이나 자료가 제출되고 판단되었다거나, 새로운 기록이나 자료가 자유심증으로 증거가치 판단을 하는 정도의 것일 경우라고 한다면, 그 기존의 사실이 왜곡되거나 은폐되었다는 사실을 섣불리 인정하여서는 아니될 것이다.

(5) 동행명령(법 제24조) 등

과거사위원회는 조사대상 및 참고인에 대하여 출석요구를 할 수 있고, 자료 및 물건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으며,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에 관하여 결정적 증거자료를 보유하거나 정보를 가진 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3회 이상 불응시 동행명령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법 제23조, 제24조).

이는 특별검사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법안 등에서 제도화되어 있는 것으로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하여 규정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지만 사법기관이 아닌 행정위원회가 인신의 자유나 문서제출요구 등에 관한 강제처분을 행할 수 있는지,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누가 그 동행명령이나 문서제출요구 등의 요건에 대한 판단을 할 것인지 등에 대하여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이는 가해자측에 대한 기본권의 침해에 관련된 사항이니 만큼, 그 실제 운영에 있어서 위헌 여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될 수도 있다고 본다.

(6) 결정통지 및 이의신청(법 제28조 등)

과거사위원회의 결정(각하,조사개시,진실규명,진실규명불능 등)에 대하여 과거사법에서는 신청인,조사대상자,참고인에게 통지하고 통지대상자에게 이의신청을 제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법 제28조).

과거사법상 명문의 규정은 없으나 과거사위원회가 행정위원회적 성격을 가지고 있고, 과거사위원회의 결정은 행정처분이라고 할 것이므로, 위와 같은 결정통지를 포함하여 과거사위원회의 처분에 대하여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만 과거사법 제32조에서 정하는 과거사위원회의 활동결과인 조사보고서나 종합보고서는 단순한 지침이나 권고사항에 불과하므로, 국가기관에 이에 대하여 존중하고 이행하기 위한 노력의무를 부과하였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여진다.

(7) 조사대상자의 보호(법 제31조)

과거사법에서는 언론보도와 관련하여 진실규명 대상기간 중 특정한 직위에 재직한 사실만으로 그 재직자가 진실규명의 범위에 해당하는 가해행위를 한 것으로 공개하여서는 아니되고, 과거사위원회의 조사보고서 보고 전에 조사대상자 및 그의 가해행위와 관련한 조사내용을 공개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면서, 보고 전의 조사내용 공개에 대하여는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도 위법성 조각사유로 인정하지 아니하고 이를 처벌하고 있다.

이는 조사대상자의 인권보호를 위한 것으로서, 과거사위원회의 보고 전 조사내용의 공개에 대하여 위법성 조각사유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헌법 제27조 제4항의 무죄추정의 원리와 형법 제126조의 피의사실공표죄를 규정한 취지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거사문제라는 사안은 국민적 관심이 집중될 수 밖에 없고, 재직자의 가해행위 사실보도와 과거사위원회의 조사내용보도의 구분이 명백하지 않다고 본다. 특히 지난해 도청테이프 사건이나 황우석 교수 사건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일부 언론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무시한채 국민의 알 권리만을 내세웠던 보도행태에 비추어, 과거사위원회의 조사내용과 관련하여 국민의 알권리 문제와 충돌되는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높다고 할 것이다.

(8) 화해를 위한 국가와 위원회의 조치(법 제32조 내지 제40조)

- 과거사법에서는 과거사위원회의 조사보고서 작성 및 보고, 이에 대한 국가기관 협조의무, 화해를 위한 국가와 위원회의 조치로서 국가에게 피해자의 피해 및 명예의 회복,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법적·정치적 화해조치, 불이익금지, 희생자를 위한 특별사면·복권의 건의, 완전한 진실을 고백한 가해자에 대한 화해조치, 가해자와 피해자·유족과의 화해, 과거사연구재단 설립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진실을 통한 화해"라는 만델라 철학이 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 소급입법의 금지 등

    헌법 제13조에서는 소급입법에 의한 소추를 금지하고 참정권 및 재산권 박탈을 금지하고 있다. 형벌이 아니더라도 이미 과거에 완성된 사실이나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입법이나 처분 등은 소급입법 금지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이는 구법질서에 대한 신뢰보호의 원칙과 함께 인정되는 것으로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서 확립된 견해이다.

   따라서 과거사법에서 소급처벌을 규정하지 않았더라도 조사대상자를 가해자로 일방적으로 규정하거나, 이들에 대하여 동행명령, 조사의무 등을 부과하고 있는 것은 가해자측에게 실질적인 불이익처분을 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법내용은 소급입법 금지의 법리나 신뢰보호의 원칙에 위배되었다는 비난이 제기될 수 있다.

- 특별사면 등의 건의

    과거사법에서는 과거사위원회에서 대통령에게 특별사면,감형,복권 등의 건의를 할 수 있고 관계 국가기관인 대통령이 그 결정 및 건의를 존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희생자들의 침해받은 권리를 회복하게 하고, 진실규명에 필요한 조사활동의 실효성 확보 및 가해자와의 화합을 위한 조치로 보인다. 그러나 현행 사면법 제10조에서 특별사면의 상신권자는 법무부장관으로 일원화되어 있고, 얼마전 사면을 제한하는 법률에 대하여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 하여 거부권을 행사하였던 사안에 대비하여 본다면, 과거사위원회의 특별사면 등에 관한 규정은 이에 부합되지 않거나 모순되는 측면이 있다.

- 화해조치

    과거사법에서는 가해자의 참회와 피해자,유족의 용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가해자와 피해자, 유족간의 화해를 적극 권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 화해와 통합이라는 과거사법의 입법목적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헌법 제19조에서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는 널리 사물의 시시비비나 선악과 같은 윤리적 판단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아니되는 내심적 자유는 물론, 이와 같은 윤리적 판단을 국가권력에 의하여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받지 않는 자유 즉 윤리적 판단사항에 관한 침묵의 자유까지 포괄하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사법의 입법목적을 달성한다는 명분에 따라 화해를 극구 거부하는 가해자와 피해자, 유족간의 화해를 강요하는 방법으로 추진하는 경우에는 헌법재판소에서 사과광고에 관하여 위헌결정을 한 사례(헌법재판소 1991.4.1. 89헌마160 결정)와 같이 헌법상 양심의 자유에 위반되는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9) 과거사 관련법과의 관계

- 과거사법에서는 다른 법령에 의하여 희생자, 피해자 및 유족의 피해 및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가 시행되고 있는 경우에는 이에 대한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법 제36조 제2항).

- 과거사 관련법 및 관련위원회

 현재 과거사 관련법은 의문사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군의문사진상규명등에관한특별법,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등에관한법률,일제강점하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거창사건등관련자의명예회복에관한특별조치법,노근리희생자심사및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등에관한법률,동학농민혁명군의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률,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 등 법률이 있다.

과거사 관련위원회로서, 근거법률에 의하여 설치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활동하거나 활동할 예정이고, 그 이외에 근거법률이 없이 설치된 과거사 관련위원회로서 경찰청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국정원 과거사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구성되어 활동중이다.

법률상 근거 없이 구성되어 활동하는 과거사 관련위원회는 임의조직이고, 그 활동은 법률상 근거가 없는 불법적인 것이다. 이는 법치행정에 반하는 것으로서 시의에 영합하였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과거사법 제33조 제3항에서 진실규명 관련 국가기관이 자체 진실규명을 위한 위원회 등 특별기구를 설치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은 임의로 조직되고 활동한 과거사 관련위원회에 대한 법률상 근거를 뒤늦게 마련하고자 시도한 것으로 보여진다.

- 과거사위원회와 과거사 관련법 등과 관계

  과거사법에서는 위 과거사 관련법에서 주요대상으로 하거나 과거사관련위원회에서 조사한 과거사 문제에 대하여 과거사위원회가 거듭하여 그 진실규명의 조사를 행하는 것을 배제하고 있지 아니하고 있다. 그러므로 동일한 과거사 사안에 관하여 과거사위원회는 다른 과거사관련위원회가 조사한 내용이라도 이중, 삼중의 반복적인 과거사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 셈이다.

과거사의 특정 사안에 관하여 과거사에 잘못이 있음을 전제로 하여 특별법이 마련되고 피해 및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가 이루어진 이상, 이에 대하여 과거사위원회가 다시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상규명을 행할 까닭이 없다. 진상규명이나 피해 및 명예회복을 전제로 하여 이미 입법화되거나 과거사 관련위원회에서 조사된 과거사 사안을 과거사위원회가 다시 진상규명을 한다는 것은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일이고, 가해자측 입장에서는 일사부재리 원칙에 반한다는 주장을 제기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과거사 관련법에서 주요대상으로 하거나 과거사관련위원회에서 조사한 과거사 문제에 대하여는 과거사위원회의 진실규명 조사대상에서 배제하는 입법을 하는 것이 타당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법률상 근거 없는 불법활동이기는 하지만 실제적으로 활동중인 과거사관련위원회의 구성이나 조사결과 등에 관한 경과규정을 마련하였어야 할 것이다.

3. 과거사에 대한 민형사상 처리방향

가. 공소시효에 관하여

과거사에 관한 민형사상 처리방향으로서,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공소시효에 관하여 현재 공소시효가 만료되지 않고 진행중인 범죄에 관하여 가해 공무원이 공직에 재임한 기간동안 시효를 정지시키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1) 공소시효 제도

      공소시효 제도는 일정한 기간의 경과를 이유로 범인에 대한 처벌을 면제하는 제도로서, 범죄행위가 종료된 후 공소가 제기되지 않고 일정한 기간을 경과하였다는 사실상 상태를 존중하여 국가의 형벌권의 행사를 못하게 하는 제도이다.

      그러므로 공소시효가 완성되어 처벌받지 아니하게 된 상태는 기존의 법에 의하여 형성되어 이미 굳어진 개인의 법적 지위라고 할 것인데, 이를 사후입법을 통하여 박탈하는 것은 개인의 신뢰보호와 법적 안정성을 내용으로 하는 법치국가 원리에 의하여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2) 공소시효 배제의 위헌성

      공소시효 배제의 위헌성과 관련하여 1996.2.10.자 헌법재판소의 5.18특별법에 관한 결정에서는, 다수의견으로 위헌성이 지적되었으나 위헌결정 정족수인 6인에 이르지 못하여 위헌결정이 되지 않았다. 5.18특별법은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파괴범죄를 범한 자들에게 당해 범죄행위 종료일로부터 군정이 종식된 1993. 2. 24.까지 공소시효를 정지함으로써 그 공소시효를 배제한 법률이다.

      위 결정의 다수의견에 의하면, 공소시효에 대한 시효배제 입법은, 개인의 인권보장의 측면에서 피의자의 처지를 대변하는 신뢰보호 원칙이나 법적 안정성의 측면에서 공소시효가 완성되어 소추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뒤에 뒤늦게 소추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으로서, 결과적으로 형벌을 사후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입법과 같으므로, 헌법에서 규정하는 적법절차의 원리나 형벌불소급의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다.

      공소시효 제도는 입법자가 형사소추에 있어서 범인필벌의 요청과 법적 안정성의 원칙을 함께 고려하여 상충하는 법익을 정책적으로 조정한 결과이다. 또한 공소시효 제도는 시간의 경과로 인하여 발생한 새로운 사실관계를 법적으로 존중하는 인권보장을 위한 장치로서 실질적 정의에 기여하는 것이다. 이에 관련하여 국가권력 남용에 가담한 자의 인권은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등의 발상에 따라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법률안을 시도한다면, 이는 위헌의 소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입법 자체도 국가권력의 남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3)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범죄

      공소시효가 완성된 범죄에 대한 소급효를 '진정 소급효'라고 부르는 데에 대비하여,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사안에 대한 소급효를 '부진정 소급효'라고 하여 이를 구별한다. 이에 대하여는 공소시효 제도에 관한 개인의 신뢰보호와 공소시효 연장을 통하여 또는 배제를 통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을 비교하여, 어느 것이 우월한 것인지를 살펴 그 형사상 책임에 관한 공소시효 문제를 입법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우리 법체계하에서는 헌정질서 파괴범과 집단살해죄 등에 대하여 이미 공소시효를 배제한다는 내용의 법률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고, 국내법적 효력을 가진 국제법규로서 전범, 반인도범죄 등에 대하여 공소시효가 배제된다고 해석되므로, 위와 같은 국가범죄에 대한 미래 사안에 관하여는 이미 입법적으로 해결한 상태이다. 따라서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사안에 대한 공소시효 연장에 관하여는 공소시효 배제에 따른 공익과 반인권적 국가범죄에 가담한 해당 공무원 개인의 신뢰보호에 따른 사익과 사이에 과연 무엇이 우월한지 여하에 대한 비교·교량을 통한 입법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4) 공소시효의 정지

      공소시효 정지제도는 소추기관이 공소권을 행사하는 데에 법적,제도적 장애가 있는 때에 그 공소시효를 진행할 수 없다는 원리에 따른 것이다. 대통령의 불소추특권과 관련하여 대통령의 재직중에는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헌법재판소 1998.6.25. 95헌마100 결정). 그러나 단순히 가해 공무원이 공직에 재임하였다는 사유는 소추권 행사에 장애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이를 공소시효 정지사유로 인정할 경우 사실상 공소시효의 소급적으로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 공무원의 직무상범죄에 대하여는 형을 가중시키지만(형법 제135조), 가중되지 않은 형에 의하여 공소시효를 적용한다(형사소송법 제251조).

     그러므로 가해 공무원이 공직에 재임한 기간에 대하여 시효를 정지시키는 제도를 두는 것은 헌법에서 규정하는 적법절차의 원리나 형벌불소급의 원칙에 반하고, 공소시효에 관한 본법인 형사소송법에도 저촉된다는 문제점이 지적될 수 있다.

나. 재심에 관하여

과거사에 관한 처리방향으로서, 과거사위원회가 재심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해 재심 청구의 기회를 확대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1) 재심제도

      재심제도는 피고인의 권리구제를 위하여 재판의 법적 안정성의 기초인 확정판결의 기판력을 배제하는 예외적인 제도이다. 따라서 법적 안정성의 견지에서 재심사유는 법률에서 특별히 규정하는 경우에 한정된다.

 즉 원판결의 증거가 됐던 서류 또는 증거물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위조 또는 변조된 것이 증명된 때이거나, 원판결의 증언,감정 등이 그 이후의 확정 판결에 의해 허위인 것으로 증명된 때 등 7가지의 일반재심사유가 있고, 특별재심사유로서 5.18민주화운동에관한특별법에서 규정하는 재심사유와, 유죄의 확정판결의 근거가 된 법률 및 법률조항에 대한 위헌결정이 있는 경우이다. 위와 같이 엄격한 재심 절차는 구체적 타당성 못지않게 중요한 법적 안정성의 이념이 반영된 것이다.

(2) 사법권 침해의 가능성

      그런데 과거사위원회가 조사한 과거사 문제에 관하여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한다면 이는 사법권 침해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 게다가 이러한 처리방향은 과거사법에서 법적 안정성을 중시하여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을 제외한다고 한 원칙조항(법 제2조 제2항)의 취지에도 반한다. 물론 과거사위원회의 과거사 문제에 관한 재심 청구를 받아들일지 여부는 법원의 전속적인 권한에 속하는 것이지만 과거사위원회의 과거사 청산이라는 대의명분과 언론,사회단체 등을 통한 세몰이성 압력을 동원되는 경우에 그 자체로서 사법권의 독립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법원이 재심을 결정한 인혁당 사건의 재심사유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이었다는 사실은 앞으로 우려할만한 선례가 될 수 있다. 또 행정위원회로서 행정부에 속하는 과거사위원회가 사법부의 판단에 제도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한다면, 이는 권력분립에 반하고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3) 입법론

      어떠한 사유를 재심사유로 하여 재심을 허용할 것인가는 입법자가 확정된 판결이나 화해조서에 대한 법적 안정성, 재판의 신속, 적정성, 법원의 업무부담 등을 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할 입법정책의 문제이다(헌법재판소 1996.3.28. 93헌바27 결정). 이미 확정판결이 있는 사안에 대한 재심 문제는, 가해자에 대한 경우에는 헌법 제13조에서 규정하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위배될 수 있는 것이고, 피해자에 대한 경우에는 개별사건에 따라 재심사유를 따져야 할 문제로서, 과거 입법사례에 비추어 특별법 제정을 통하여 재심이 가능하도록 하는 입법을 강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으로 본다.

다. 민사상 시효배제에 대하여

과거사의 처리방향으로서, 공소시효를 배제하지 않는 대신 "국가의민사상시효이익포기를위한특별법"을 제정하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1) 민사상 시효제도

     현행 제도에서 국가가 불법행위를 하더라도 피해사실을 안 때로부터 3년, 피해발생 이후 5년(일반 소멸시효는 10년)이 경과하면 시효완성으로 피해자가 그 손해배상을 받지 못하게 되는데, 과거사 처리방향에서는 그 시효를 배제하여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이고, 그 피해 구제기간을 정부 수립 이후인 '1948년 8월 15일 이후'로 설정하였다고 한다.

(2) 민사상 시효배제에 대한 법리

      민사사건의 소멸시효는 '권리 위에 잠자는 자'에게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으로서, 시간의 경과와 권리가 소멸한다는 점에서 형사사건의 공소시효와 유사하다. 형사의 공소시효가 범죄행위의 종료시부터 시작하는 등의 객관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 민사의 소멸시효는 청구권 행사를 게을리하였다는 주관적인 측면을 고려한 것이다.

       반인도적 범죄의 피해자라고 하여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반인도적 범죄 등에 관한 민사상 소멸시효에 관하여도 공소시효와 마찬가지로 공익의 필요나 당위성이 있다고 하여 무한정 시효를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효로 인한 개인적 법익과 시효를 배제하고자 하는 공익과의 비교 등을 통하여 이를 해결하여야 하는 것이다.

(3) 특별법에 의한 보상

      또한 반인권적 국가범죄 등에 관하여 소멸시효를 배제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제정·시행중인 관련 특별법의 보상규정이 있다고 한다면, 이중의 배상이라는 법리적인 문제가 제기될 수 있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야 하는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 특별법의 보상에 비하여 시간이나 비용 면에 있어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지적될 수 있다.

그러므로 권리구제라는 미명하에 사실상 소멸시효를 배제함으로써 국가재정을 파탄낼 위험을 초래하거나 불안정한 법률관계를 야기하는 것보다는 특정사안에 따라 보상에 관한 특별법 제정에 의하여 보상을 하는 입법을 추진하는 것이 타당하고, 이미 특별법규에 따라 보상이 이루어졌다면 그 보상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함은 당연할 것이다.

4. 맺는 말

우리나라의 불행한 현대사에서 어두운 과거가 있었고, 이를 진실규명과 화해를 통하여 털어내여야 한다는 점은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바람직한 일이다. 또 과거사에 의한 피해자는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적법절차에 따라 구제받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과거사 청산의 문제라도 현행 헌법과 법률 체제에서 처리될 수 없는 사안은 원칙적으로 역사적 평가에 맡겨야 할 사항이다. 반세기나 지난 역사적 사안, 공소시효가 경과한 사안, 확정판결 및 재심 등을 통하여 실체적 진실이 명백히 밝혀진 사안 등 오래 전의 역사적 사건이나 기존에 형성된 과거사건에 대하여도 함부로 어떠한 법적 조치를 시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역사적 평가에 맡길 이러한 사안에 대하여 어떤 법적 조치를 시도한다면, 이는 법률불소급 금지의 원칙과 재판의 독립성, 법적 안정성 등 헌법과 법치주의 체제를 훼손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또한 공익이나 국가적, 정치적 문제를 내세워 개인의 인권이나 신체의 자유, 법적 안정성을 무시하는 것이야말로 청산되어야 할 국가적 인권침해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과거사 부분에 대하여는 법적 처리보다는 역사적 평가에 맡기자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본다. 이러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바탕 위에서 진정한 의미의 과거사 진상규명과 화해가 이루어져야 한다. 과거사위원회는 향후 활동과정에서 과거사법에서 지적되는 헌법위반적 요소를 진지하게 검토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과거사의 향후 처리방안에 관하여는 구태여 위헌시비가 있는 입법을 통하여 국민들에게 대립과 투쟁, 혼란과 저항 등을 야기할 수 있는 상황은 지양하여야 마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