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에 관한 소고

  이 내용은 2006. 8. 8. 참여연대에서 개최한 '헌법재판소 18년, 헌재를 평가하고 미래를 구상한다'  토론회에서 토론자로서 발표한 내용입니다.

      
        변호사 이  헌('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사무총장)

1. 헌법재판소는 대법원과 함께 최고 사법기관으로서, 헌법질서를 수호하고 기본권을 보장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다. 본 토론회의 취지문에서 "헌법재판소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사안에 대하여 법적 기준과 지침을 정한다"는 의미는, 얼마전 대통령탄핵이나 행정수도 사건에서 보는 바와 같이 헌법재판소가 국가적인 중요 사안에 관하여 헌법을 해석하고 적용함으로써 헌법적 쟁의를 해결하고 헌법침해를 방지하는 작용을 행하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헌법재판소의 주된 기능과 역할은 사법적 절차에 의하여 헌법질서를 유지하고 수호하는 것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2. 우리 헌법의 기본질서는, 국민주권의 원리, 자유민주주의, 사회국가,문화국가,법치국가,평화국가의 원리를 기본원리로 한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기본원리하에 도출되는 우리 헌법의 기본질서인 정치적 측면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경제적 측면에서 사회적 시장경제질서, 그리고 평화주의적 국제질서 등을 유지하고 수호하는 기능과 역할을 담당한다. 이에 따라 우리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의 관련사건에서 자유민주주의를 헌법의 최고이념으로 하여, 이를 유지하고 수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민주주의의 적으로부터 진정한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이른바 「방어적 민주주의론」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3. 또한 헌법재판소는 위헌법률심판과 탄핵, 정당해산심판을 통하여 공권력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러한 기능을 통하여 공권력에 합헌성을 담보하고, 정치권력을 순화하며, 나아가 폭력에의 호소를 예방하고, 정치적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사법부가 행정부와 입법부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판단하는 「사법적극주의」는 단지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를 위하는 판단을 한다는 것일 뿐만 아니라, 원내다수파의 횡포를 방지하는 민주적 기능과 행정부와 입법부의 밀착현상에 대한 견제적 기능 등 집권세력을 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데에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4. 물론 헌법재판소는, 헌법소원이나 위헌법률심판 등 헌법재판을 통하여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방지하고 기본권을 구제하고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기본권보장기관의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기본권보장기능은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헌법재판소의 주된 정책적 사법기능에 앞선다고 보기는 곤란할 것이다. 설사 보는 관점에 따라 이러한 기본권보장기능을 중시한다고 하여도,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가치만을 헌법재판소의 기능과 역할이라고 보아서는 아니될 것이고, 나아가 오로지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기준만이 헌법재판관의 인선기준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5. 여기서 도출될 수 있는 헌법재판관의 바람직한 인선기준은, 헌법수호와 기본권보장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균형적인 시각을 지닌 인물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헌법재판소법 제4조에서 규정한 바와 같이,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인 것이다. 발제문에서 제기한 다양성,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 보호의식, 인권감수성 등도 헌법재판관의 인선기준으로서 필요한 가치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으나, 이러한 가치만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에는 헌법재판소의 본래 기능인 헌법수호기능이 퇴색될 우려가 있고, 헌법재판에 있어서도 요구되는 헌법재판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을 것이다.

6. 헌법재판관의 인선과 관련한 논의는 최근 코드인사의 논란과 무관하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 실제로 임명권자인 현 대통령은 대다수 언론의 거센 비난을 무릅쓰고 자신의 시험 동기이면서, 대통령 탄핵사건과 행정수도 헌법재판에서 집권여당측 대리인 역할을 하던 인사를 헌법재판관 후보로 추천하였고, 국회에서 큰 어려움 없이 그 인사에 대한 임명절차를 관철시켰다. 그렇지만 헌법재판소가 현 정권과 이념이나 코드 및 개인적인 인연 등을 함께하는 인사들 일색으로 구성된다면, 우선 행정,입법,사법부가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권력분립의 원리를 기초한 헌법정신이 훼손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밖에 없다.

7. 헌법재판을 포함하는 사법의 핵심은 공정한 재판이고 이를 위하여서는 헌법재판에 대하여 엄격한 독립의 보장 및 재판관의 신분보장 등이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등 최고법관에 대한 형식적인 임명권을 가질 뿐이고, 실질적인 관여권이 없다고 보는 것이 우리 헌법에서 추구하는 권력분립이나 사법의 독립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볼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우리 헌법에서 헌법재판소를 대통령·국회·대법원장이 합동으로 구성하게 하는 이유는,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성격을 지닌 사건을 처리하는 관계로 그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또한 헌법재판소로 하여금 헌법수호기관으로서 역할을 엄정하고 공정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8. 대통령은 지난 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한 국민 일부나 정치적 세력의 대통령이 아니라, 국가로서 조직된 공동체의 대통령이고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의 범위를 초월하여 국민 전체에 봉사함으로써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자신의 유일한 권력이 인사권이라는 등의 사유를 내세워 자신과 이념이나 성향을 같이하거나,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인사만을 위주로 하여 헌법재판관 등 최고법관을 임명하고자 한다면, 또 하나의 코드인사 논란에 놓여짐은 물론이고, 정치적 중립과 독립이라는 사법의 본질이나 헌법재판소의 기능과 역할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강한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