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위는 해체되어야 한다
    
           변호사 이 헌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사무총장, 홍익법무법인 구성원변호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는, 대법원을 비롯한 대다수 법조인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긴급조치 위반사건의 유형을 분석한 보고서에 당시 판결에 참여한 판사들의 실명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불행한 현대사에서 사법부도 어두운 과거를 가진 적이 있었고, 이러한 과거사 문제를 진실규명과 화해를 통하여 털어내야 한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로 인한 억울한 전과자나 피해자가 있다면, 최근 수지김 사건이나 인혁당 사건의 사례와 같이 국가배상 및 재심청구 등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적법절차에 따라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를 구제받게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라도 오랜 시일이 지나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없는 사건을 피해자 주장만으로 법적 제재를 행할 수는 없다. 또 당시 시대상황에 따라 역사적·법률적 당위성이 평가되어야 하는 사건에 대하여 섣불리 현재의 시대정신을 내세워 법적 제재를 시도할 수는 없다. 이러한 경우에는 소급처벌의 금지, 법적 안정성 등 헌법원리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 이는 과거사 청산의 미명하에 헌법원리에 위반하여 새로운 과거사를 저지르는 일이기도 하다.

과거사 문제에 대하여는 법적 처리보다는 역사적 평가에 맡겨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진실에 바탕을 둔 진정한 화해"라는 입법목적으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이 제정되고, 과거사위가 구성되어 활동하게 되었다.

과거사법에서는 법적 안정성을 위하여 과거사위의 조사대상에서 법원의 확정판결을 진실규명의 대상에서 원칙적으로 배제한다. 다만 예외적으로 과거사위가 민형사상 재심사유에 해당하여 진실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건에 한하여 진실규명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법률상 기구에 불과한 과거사위가 법원의 확정판결을 판단하고 재심사유를 인정하는 것은 우리 헌법의 절대적 가치인 권력분립이나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있다. 또한 과거사법은 대선의 국면에서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데도 과거사위는 과거의 확정판결을 임의로 조사하여 현재의 잣대로서 그 판결의 부당성을 시비삼고, 당해 판결의 관여 정도도 살피지 않은채 판결에 나타난 모든 판사의 명단을 공개한다는 것이다. 법률상 행정기구에 불과한 과거사위가 천여건에 이르는 긴급조치 사건에 대하여 모두 재심사유를 인정하는 것은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을 해치는 것이다. 또 포플리즘적 세몰이로 국민의 감성을 자극함으로써 당시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적법하게 재판에 임한 해당 판사를 유신 독재에 협력한 인물로 낙인찍고 이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다. 이로써 이들에 대한 인신공격과 인적 청산을 요구하는 등의 소란스런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는 법조비리 등으로 국민으로부터 엄청난 불신을 받는 사법부를 더욱더 곤란한 지경에 빠지게 하는 일이다.  

출범 당시부터 코드인사의 논란이 있었던 과거사위가 긴급조치 위반사건의 관련 판사를 공개하는 것은, 과거사위에 부여된 소임인 진실규명과 진정한 화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초헌법적으로 국민간의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는 일이다. 또 이러한 와중에서 판사명단 공개가 이렇게 논란이 될지 몰랐다거나, 특정신문에서 이미 판사의 명단을 낱낱이 공개하였음에도 판결내용을 요약하는데 판사의 이름이 당연히 들어갔을 뿐이라는 등의 변명은 법령에 따라 공무를 수행하는 국가기관이기를 포기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과거사위는 과거사 문제를 법적 평가가 아닌 역사적 평가로 맡기자는 국민적 여망에 역행하였다. 또 대선 국면에서 민생을 팽개치고 재집권에 몰두하는 현 정권에게 유리한 국면을 제공하고자 하는 정략적 의도도 나타냈다. 그렇기에 현 정권의 국민 편가르기와 과거사 몰두에 지친 국민을 위한다면, 과거사위는 즉각 해체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