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협신문 1.30자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개헌논의는 중단되어야 한다
    
           변호사 이 헌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사무총장, 홍익법무법인 구성원변호사)

노무현 대통령이 연초에 대국민특별담화를 통하여 전격적으로 발표한 4년 연임대통령제 개헌제안에 대하여, 일반 국민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그 개헌의 필요성에 대하여는 상당 부분 긍정하면서도, 개헌 제안의 시기와 방법이 부적절하여 차기 정부에서 논의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측은, 임기말 권력누수로 대표되는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를 일치시켜 국정의 안정을 도모하며, 이를 위하여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만료 시기가 거의 일치하는 2008년에 앞서 올해에 개헌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여론이 불리해도 계획대로 개헌안을 발의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개헌안을 제안하는 행위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에 속한다고 볼 수 있지만 통치행위라고 하여 전적으로 면책이 되거나 무제한의 자유재량행위가 될 수는 없고, 국민주권의 원리 등 헌법원리에 위배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진다. 또한 대통령이 개헌안을 제안하는 행위는 국가원수로서 일부 지지자가 아닌 국민 모두를 위하여 국정을 통합하고 조정하는 지위에서 행사한다고 보는 데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여론조사에 나타난 바와 같이 대다수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데도 개헌을 추진한다거나, 나아가 국회나 국민투표에서 개헌안이 부결될 것이 예상되는데도 개헌을 추진한다거나 개헌에 반대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식의 주장은, 국가의사의 결정은 국민적 합의에 기초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국민주권의 원리에 반하는 것이고,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대통령의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현행 헌법에서 대통령의 임기를 5년으로 하고 중임을 금지한 조항은, 이론적 근거는 없으나 중임을 규정할 경우 그 중임 여부나 3선 개헌 시도를 둘러싼 정국의 혼란을 초래하였던 우리 헌정사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다. 또한 현행 헌법상 5년 단임의 대통령 임기제도는 권위주의 정부에 저항한 국민적 투쟁의 성과로서, 임기연장이나 중임변경에 관한 헌법의 특례조항과 함께 그동안 과거 1인에 의한 장기집권 시도에 따른 정치적 폐단을 예방하고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을 확립하는데 기여하였다.

우리 헌정사가 겪은 뼈아픈 과거사와 강력한 지도자를 희구하는 상당수 국민의 정서에 비추어 앞으로 과거 헌정사에 나타난 3선개헌 등 장기집권 시도에 따른 정치적 폐단이 결단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따라서 4년 연임 대통령제에 대한 국민 선호도가 높다 해도 평화적 정권교체를 보장하는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는 여전히 그 제도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앞으로 장기집권의 우려가 없어 1987년 5년 단임 대통령체제는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할 수 없다.

4년 연임 대통령제하에서도 첫 취임후 재선을 위한 인기영합적이거나 단기적인 정책수행으로 오히려 국정안정을 해칠 수 있고, 재선 후에는 현재 미국의 부시 대통령의 경우와 같이 재선되자마자 바로 레임덕 현상이 나타나는 폐단이 나타날 수 있다. 또 지금 임기말 권력누수 현상의 주된 원인은 현 대통령의 미숙하거나 오만한 국정수행, 과도한 언행 등으로 초래된 국정혼란과 이에 따른 민심이반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 주된 원인에 대한 솔직한 반성과 대처방안을 모색하지 않은채 권력누수 현상만을 피하기 위하여 개헌을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또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잦은 선거가 불필요한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를 내세우지만, 이는 결국 여당이 국회 다수당을 차지함으로써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기한다는 측면만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대선과 총선이 동시에 치루어지는 경우 대통령이 집권하는 4년 임기 동안은 1인 내지 1당 독재정부 출범을 가능하게 하고 주권자인 국민들에게 총선을 통하여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심판할 기회를 부여되지 않게 될 수 있다. 이는 자유민주주의와 선거제도 등 대의민주주의에 관한 헌법원리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고 삼권분립의 원리에 의한다면 대통령, 국회의원, 대법원장 등의 임기를 서로 불일치하게 정함으로써 대통령이 다른 권력과의 견제와 균형을 통하여 국정을 수행하게 되므로, 오히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일치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잦은 선거의 폐해를 없애려면 굳이 견제관계에 있어야 할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일치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의 임기를 일치시켜야 한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과거 헌정사나 다수 국가의 역사에서 집권자가 개헌안과 결부된 국민투표를 통하여 자신에 대한 국민의 신임을 물음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 이용한 사례도 있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개헌 제안은 정략적이지 않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전에는 개헌에 나서지 않겠다고 밝혔던 노 대통령이 대선이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느닷없이 국민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헌안을 추진하겠다고 주장하는 데에 대하여 이를 정략적이지 않다고 보는 국민들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보여진다.

노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 진정으로 나라를 위한 마음을 가진다면, 대부분 국민이 반대하고 정략적이라고 보는 현시점에서의 개헌논의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개헌안 제안에 반대입장인 국민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가지고, 북한핵문제, 양극화, 부동산, 실업, 한미FTA 등 시급하고도 산적한 국가현안에 대한 국정수행에 전념하여야 할 것이다. 상당수 국민들이 찬성하고 있다는 4년 연임 대통령제를 포함한 개헌문제에 대하여는 차기정부에서 진지하고도 신중한 논의를 통한 국민적 합의를 기초로 하여 추진하는 것이 국민주권의 원리와 국민투표에 의하여 헌법개정을 확정하는 우리나라의 헌법원리에 부합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