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지난 17일 상지대학교에 교육부가 파견한 임시이사들이 학내 분규 정상화 이후 정식이사를 선임한 것은 무효라고 판시하였다. 위 판결에서 대법원은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학의 설립 및 운영의 자유라는 헌법상의 기본권이 두텁게 보호되어야 하고, 임시적인 위기관리자에 불과한 임시이사들이 정식이사들을 선임하는 내용의 이사회 결의는 사학의 정체성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것이어서 사학의 설립 및 운영의 자유와 정면으로 배치하므로 무효”라고 판시하였다. 우리는 이번 대법원판결이 교육제도의 근간을 정한 헌법규정에 비추어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 헌법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우리 헌법이 채택한 근본제도인 정치적 자유민주주의, 기본권 보장, 자유시장경제제도 등과 교육제도는 불가피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대학의 자율성 등의 요구가 국민의 평등교육권에 비해 하위개념이라거나 법률에 의해서는 얼마든지 제한할 수 있다는 식의 일부 좌파 교육이론가의 주장은 헌법이념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교육의 자주성, 대학의 자율 등이 말로만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 상지대의 경우에서 보듯이 현재 많은 사학에 기존의 재단이사가 해임되고 대신 정부로부터 임시이사가 파견되어 있다. 대학의 자율성이 헌법으로 보장된 우리 나라 교육제도 하에서 임시이사는 말 그대로 학원의 위기상황을 해소할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단기간 동안의 관리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정 반대로 가고 있다. 국민의 정부 이후 10년간 임시이사 체제가 해소되고 설립자에게로 경영이 복구된 경우는 거의 찾을 수 없고, 오히려 임시이사가 정식이사를 선임하는 방식으로 재단의 주체를 바꾼 경우가 태반이다. 이는 정부와 코드가 맞는 사람을 임시이사로 파견하는 추세와 맞물려 ‘사학의 무상몰수’라는 운동권적 주장에 유사한 결과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거듭 강조하건대 대학의 자율성은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것이다. 우리 헌법 하에서는 국민 누구나 대학을 설립하고 헌법이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 그 스스로가 믿는 이념을 교육할 수 있다. 모든 교육과정에 영어만 사용하는 대학도 만들 수 있고, 반대로 한글만을 사용하는 대학도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교육시스템을 통해 나라 전체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가 믿는 교육이념인 것이다.

그와 같은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것 중 하나가 재단법인 경영의 자유이고, 재단 경영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재단 이사진 구성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좌파 학자들은 대학은 재단 혼자의 것이 아니라 학생, 교수, 교직원, 재단 4자가 주인이라고 하면서 재단 이사진의 선정에 있어서도 위 주체들의 의사가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재단이 교수가 담당하는 교육에 같이 관여하고 학생과 같이 재단도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혼동한 주장으로 판단된다.

학생은 교육을 받는 사람, 교수는 교육을 하는 주체, 교직원은 학교살림을 맡은 주체이지, 대학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법인의 주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기독교를 반대하는 학생은 다른 대학을 선택함이 타당하지 기독교 대학에 들어와 기독교 교육을 하지 말라고 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사회주의 사상을 신봉하는 교수라면 그런 교육을 실시하겠다는 대학을 찾아가 취업할 것이지 자유시장경제를 교육할 목적으로 재단이 설립한 대학에 들어와 사회주의 교육을 하자고 주장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재단의 운영방향에 관해 교수 등이 재단의 구성 자체에 참여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아무런 합리적 근거가 없고, 이 점에서 학교운영위원회 등이 재단이사를 선정할 수 있도록 한 개정 사학법은 위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개정 사학법에 관하여 국회에 개정 법률이 계류 중이고, 헌법재판소에는 위헌소송이 계류되어 있으나, 어떻게 된 연유인지 시간만을 끌면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우리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사학법을 둘러 싼 논의의 결론이 내려졌다고 판단한다. 국회나 헌법재판소에서 신속한 법률개정 또는  위헌결정을 내릴 것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