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월부터 내년 7월까지 대법원장을 포함하여 전체 대법관 14명 중 10명이 물러나고, 헌법재판소장을 포함한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이 물러나게 됨으로써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이 절반 이상이 바뀌는 그야말로 엄청난 법조계의 인사혁명을 겪게 되었다.

현 정권은 지난해 대법원의 국가보안법 합헌판결이나 선거법위반 사건판결과 관련하여 현 대법원의 구성을 문제삼는 등 불만을 표출한 바가 있었고, 헌법재판소와는 탄핵사건의 기각결정 당시 찬사를 보냈다가 돌연 행정수도특별법의 위헌결정과 국가보안법의 합헌결정과 관련하여 헌재무용론이나 인사청문회를 제기하기도 하였다. 게다가 집권여당의 어느 인사는 앞으로 대법관과 헌재 재판관을 소위 개혁적인 인사로 추천한다고 공언하였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개혁이라고 함은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그들과 같은 이념이나 성향(코드)를 가지거나 동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현 정권의 임기 동안 대법원장과 대법관 및 헌재 재판관 등 최고법관은 모두 현 정권과 이념이나 코드를 함께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대통령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인사로만 채워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현 정권과 이념이나 코드 및 개인적인 인연 등을 함께하는 인사들 일색으로 구성된다면, 우선 행정,입법,사법부가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권력분립의 원리를 기초한 헌법정신이 훼손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밖에 없다. 또한 이렇게 된다면, 현 정권으로부터 피해를 보거나 현 정권과 다른 이념과 인연 등을 가지고 있다는 사유로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자신의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곳을 아예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하는 위기의식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또 자신의 지위와 재산이 기득권이거나 개혁의 대상이라고 하여 탄압받고 약탈을 당하여도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을 걱정하는 분들도 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현행 헌법상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이면서 국가원수로서의 지위와 행정부수반으로서 지위를 겸하도록 되어 있다. 이에 따라 헌법에서는 국가원수로서의 대통령에게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하고,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법관을 임명하며,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임명하는 등 헌법기관을 구성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우리 헌법에서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거쳐 대법원장이나 대법관을 임명하도록 하고, 헌재 재판관 중 3명은 국회에서 선출하고,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구성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의 헌법정신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구성에 관하여 우리 사회의 정치적, 이념적인 분포를 적절하게 반영함으로써 두 기관을 특정 정권이나 이념의 추종자나 동조자로 구성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사건의 결정에서 "대통령은 지난 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한 국민 일부나 정치적 세력의 대통령이 아니라, 국가로서 조직된 공동체의 대통령이고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의 범위를 초월하여 국민 전체에 봉사함으로써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대통령이 공공연히 개혁을 내세워 자신이 임명하는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과 헌재 재판관을 모두 대통령 자신과 이념이나 성향(코드)을 같이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과 개인적 인연이 있는 인사로 임명하고자 한다면,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는 일부 국민이나 정치적 세력의 대통령임을 자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통일성과 전체성을 대표하는 국가원수로서의 책무를 저버리는 행위인 것이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탄핵사건의 결정에서,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특정정당을 지지하고, 현행법의 정당성과 규범성을 문제삼는 언행을 한 것은 법치국가의 원리와 헌법준수 의무를 위반한 행위라고 판시하였다. 또한 대통령이 정권의 진퇴와 명운을 걸고 추진한 수도이전 작업을 위헌이라고 선언하였다. 이들 사안에서 대통령의 입장을 직접 변호하였거나 세몰이식으로 지지하였던 법조인들이 줄줄이 국가요직에 등용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언론에서는 보은인사라고 표현하였다.

주지하다시피 최근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된 인사는 보수,진부를 아우를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가가 다수이라고 하지만, 탄핵사건에서 대통령을 직접 변호하였고, 전자투표 논란으로 수개표까지 하였던 대통령 당선무효 및 선거무효 사건의 대통령측 대리인을 수행하였으며, 현 정권에서 정부공직자윤리위원장으로 재직하였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취임사 등에서 대한민국 전임 대통령들의 집권시기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였던 시대"라고 폄하하였다. 그러나 그의 집권후 사상유례 없는 코드인사, 낙하산 인사 등으로 공직을 전리품화하고 있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바로 대통령이 자신의 위헌적인 언행을 옹호했던 법조인을 최고법관으로 등용한다면, 그것도 권력분립의 한축으로서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견제해야할 사법부의 수장으로 임명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시대가 끝나지 않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국민과 사법부, 그리고 법조인들은 사법부의 수장을 포함한 최고법관이 헌법의 정신과 법치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꿋꿋한 양심의 소유자이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앞으로 대법원과 헌법 재판소의 최고법관을 새로 구성하는 데에 있어서 현 정권이 추구하는 코드인사, 보은인사를 배격하고, 사법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체제를 수호하는 보루로서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권력분립과 사법부의 독립을 추구하는 우리나라의 헌법질서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원리로 하는 우리나라의 체제를 지켜내기 위하여, 우리가 과연 어떤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을 진지하고도 지혜롭게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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